세 모녀의 소확행
세 모녀의 소확행
  • 이명순 수필가
  • 승인 2020.04.2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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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명순 수필가
이명순 수필가

 

코로나 여파로 일을 쉬면서 시간적인 여유가 많아졌다. 집안일을 하며 뭔가에 몰입할 때는 시간의 흐름도 빠른데 어느 날은 무료하게 리모컨만 만지작거리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일주일에 한 번씩 가까운 친정으로 향한다. 한 시간 거리인데도 작년까지는 바쁘다는 핑계로 몇 달에 한 번 가기도 쉽지 않았다. 요즘은 사회적 거리두기 동참으로 본의 아니게 자율적 자가 격리 중이다. 최소한으로 외출을 삼가고 있지만 그런 가운데 고령의 어머니가 혼자 사시는 집만 방문하는 편이다. 매주 한 번씩 가다 보니 그 시간적인 여유로움이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다.

친정어머니가 혼자 계신 집은 늘 적막하다. 사형제 중 여동생만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매일 드나들며 어머니를 챙긴다. 어머니에게 여동생은 가장 믿고 의지하는 든든한 보호벽이다. 그런 여동생에게 미안해서 친정에 갈 때마다 뭔가 색다른 먹거리를 준비하려고 노력한다. 입맛을 잃어 맛있는 것도, 먹고 싶은 음식도 없다는 어머니는 여동생과 내가 같이 웃고 떠들며 밥상을 차리면 말씀으론 거부하면서도 밥그릇을 다 비우신다.

여동생은 전통적인 한식 밥상을 잘 차리고 나는 국적불명의 퓨전 음식을 준비하는 편이다. 다국적 학생들을 만나다 보니 새로운 음식을 좋아하는 나는 그들 나라의 음식을 우리나라 모양으로 비슷하게 흉내 낸다. 어머니는 이국적인 향이 강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 약간씩 절충해서 만들면 크게 거부감 없이 드시기는 한다. 특별한 메뉴가 없을 때는 집 주변에서 달래를 캐다가 달래장을 만들고 나물밥을 해서 비벼 먹어도 요즘에는 좋다.

점심을 먹고 운동도 할 겸 여동생과 뒷산에 가기로 했다. 동생이 전에 봐 둔 두릅나무가 밀집되어 있는 곳을 가보자고 해서 따라나섰더니 이미 누군가가 다녀갔는지 총알처럼 삐죽 올라오는 작은 것들만 많았다.

어렸을 적에는 놀이터처럼 올라다니며 놀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참나무 잎이 수북해서 다니기가 불편하다. 잘못 미끄러지거나 넘어지면 이젠 병원에 가서 누워야 할 나이가 야속하다. 켜켜로 쌓인 낙엽 때문인지 산나물은 보이지도 않는다. 한 바퀴 돌다 보니 집 뒷동산이다. 그대로 내려 가다 보니 두릅나무가 여기저기 꽤 많았다. 아직은 어린나무인지라 실한 두릅은 아니고 작지만 잎이 폈다. 집 바로 뒤에 있는 달래만 캤지 몇 발자국 더 올라오니 이리 두릅나무가 있었는지도 몰랐다.

오가피나무는 이제 연초록의 예쁜 새순을 내밀고 있다. 며칠쯤 지나면 오가피 순을 따서 먹을 수 있겠다. 한 시간도 채 안 되었는데 땀이 송골송골 맺히며 기분이 상쾌하다.

산에서 내려오지 않는 나이 든 두 딸이 걱정되는지 어머니가 마당에 나와 계셨다. 장독대 옆에 앉아 두릅과 한 움큼 뜯은 쑥, 그리고 달래와 엄나무순을 다듬었다. 혼자 계셔서 말동무가 없으니 외롭다는 어머니와 두 딸이 웃고 떠들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갖고 싶다. 이 소중한 시간은 올봄 시간의 여유로움이 준 기회였다. 세 모녀가 함께할 수 있는 작지만 소소한 행복이 앞으로도 매년 봄마다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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