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듯 흐르는 무심천에서 마음을 다스리며
무심한 듯 흐르는 무심천에서 마음을 다스리며
  •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 승인 2020.04.20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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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고대 인류문명의 시작이 큰 하천을 중심으로 발생하였고, 현재 세계의 많은 대도시 역시 넉넉한 수자원을 공급하는 큰 강을 중심으로 존재한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역대 왕조의 도읍지들은 큰 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전한 것을 볼 수 있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신라와 가야가, 그리고 대동강을 끼고 고구려가, 한강과 금강을 기반으로 백제가 번영을 누렸다. 무엇보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강이 바로 세계에 자랑할 만한 한강이다.

100만 도시를 지향하는 한반도 중심의 맑은 고을 청주에도 하천이 관통해 흐르고 있다. 무심한 듯 흐르는 `무심천'이다. 그런데 무심천만의 특이한 점은 바로 강의 흐름이 예사롭지 않다는 점이다. 다른 강들과는 특별나게 물길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른다. 때문에 이름도 무심천(無心川)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청주 시민 가운데 누가 이 물길을 따라가며 무심할 수 있을까. 마음의 고향 같은 물길이 무심천인데 말이다.

무심천이란 이름은 18세기 중엽 만들어진 지도에서 처음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무심천을 `심천(沁川)'이라 불렀고, 조선시대에는 대교천(大橋川)이라 불렸다. 그런데 무심천이란 이름으로 불린 데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그중에 남석교와 연관된 전설이 대표적이다.

어느 해인가 큰 장마가 지난 뒤에 행자승이 탁발을 다니다 물가의 오두막집을 찾았는데, 집주인 여인이 잠시 볼 일이 있다며 아이를 봐달라고 했더란다. 그런데 피곤한 행자승이 깜빡 잠이 든 사이에 아이가 집을 나가 통나무 다리를 걷다가 그만 불어난 물살에 휩쓸리고 말았다. 허망하게 아이를 잃은 여인은 이후 머리를 깎고 산으로 들어갔고, 소식을 전해 들은 일대의 스님들이 모여 아이가 사고를 당한 나무다리를 걷어내고 튼튼한 돌다리(남석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같이 가슴 아픈 사연을 품고 아무렇지 않게 무심히 흐르는 냇물이라 해서 사람들이 `무심천'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무심한 듯 그렇게 유유히 흘러온 무심천은 오늘도 청주 사람들의 삶과 함께 새로운 사연들을 만들며 무심히 흘러간다. 도시의 발달과 더불어 강줄기도 많은 변천을 겪었다. 지금의 무심천 흐름은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스마트폰 등 여러 다양한 정보 통신 수단으로 인해 유례없는 상호 네트워크를 이루며 살고 있다. 그럼에도 그 어떤 시대보다 현대인들은 불안과 고독 등 심리적인 고통은 심하게 느끼고 살아간다. 사회 심리학자들은 이 문제를 개개인이 각자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진단을 한다. 살아가는 의미를 상실하고, 정체성 혼란으로 마음 둘 곳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각자 삶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힘이 필요하다. 진실된 자기의 발견은 삶의 의미를 잃고 방향을 상실하고 고통받는 현대인들에게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이 위축되고 힘든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온 나라가 집단 우울증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는 말이 생길 정도이다. 이런 때일수록 외면적인 가치 기준인 위선과 거짓의 모습을 벗겨 내고 진실된 자기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무심한 듯 흐르는 무심천의 강물처럼 느림의 미학을 마음에 새기며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와 의미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있는 듯 없는 듯 무심천을 걸으며 무심의 경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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