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당신들보다 똑똑하다
국민은 당신들보다 똑똑하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0.04.19 1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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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대부분 승패는 묘수가 아니라 악수에서 갈린다. 바둑계의 한 고수가 했다는 말이다. 이번 총선 결과를 보고 새삼 떠오른 말이다. 악수가 거듭되면 패배의 상처도 그만큼 더 깊어진다는 당연한 이치까지 깨닫게 됐다. 그러나 정치는 묘수를 겨루는 장이 돼야한다. 국가경영의 중추인 국회가 가장 불신받는 국가기관으로 전락한 것은 삑사리만 내지않으면 승자가 되는 저질 경쟁을 되풀이 해온 탓이 크다.

지난 1월 31일 보수 대통합을 모색할 추진위를 출범시킨 당시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 전진당 등이 국회에서 1차 대국민보고대회를 열었다. 개회식에서 당 대표들의 문재인 정권 성토가 이어졌다. 전진당 이언주 대표는 `법을 무시하는 악랄한 정권'이라고,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3년도 안돼 나라를 완전히 망가트린 정권'이라고 규탄했다. 이어 연단에 오른 새로운보수의 하태경 대표도 시작은 다르지 않았다. `최초로 역사를 후진시킨 정권', `친문민주에서 친문독재로 변질된 정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 대표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언급하며 방향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이어진 발언은 대충 이랬다. “국민은 똑똑합니다. 반문(反文) 잘 한다고 표 안줍니다. 나라 잘되게 해야지 거리투사 잘 한다고 표 안줍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각해 국가안보 수준입니다. 이런 문제는 정부를 도와줘야 합니다. 새로운 보수당은 코로나 잡겠다고 나선 문재인 정권을 통크게 밀어줘야 합니다”. 순식간에 좌중은 얼어붙었다. 누구도 호응하지 않았다. “미친소리 하고 있네”. 이윽고 객석에서 터져나온 핀잔이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연단을 내려오던 하태경의 모습. 보수 통합을 이루고도 총선에서 참패한 미래통합당의 운명이 확정된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돌아선 민심을 얼마나마 되돌릴 수 있는 골든타임은 그렇게 허망하게 지나갔다. 이후 통합당은 종로의 이낙연을 피해가려는 황교안 대표의 구차한 리더십을 시작으로 다양한 악수와 실책을 연발했고, 급기야 “개헌만은 막게 해달라”는 읍소작전에 이르고 만다. 그나마 무릎끓고 싹싹 빌다시피 한 읍소가 묘수라면 묘수였다. 영남을 움직여 연민을 자아낸 덕분에 간신히 100석을 넘겨 명맥을 잇게 됐으니 말이다.

그나마 통합당이 위로삼을 만 한 것은 희망까지 잃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지역구를 보자. 84석을 건져 민주당(163석)의 반토막에 그쳤지만 득표율은 41.5%로 민주당(49.9%)과 8.4%포인트 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253개 전 지역구에 후보를 낸 민주당과 달리 237곳에만 후보를 낸 점까지 고려하면 그렇게 큰 격차는 아니다. 위성정당끼리 겨룬 비례투표에서는 득표율 1위를 했다. 박차고 오를 발판까지 잃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참패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며 황교안 전 대표는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고 했다. 통합당은 총선, 대선, 지선, 다시 이번 총선까지 내리 네 번을 졌는데, 그 때마다 되풀이 된 말이었다. 진단은 `국민의 믿음을 얻는데 실패했다'였고, 처방은 `뼈를 깍는 성찰과 쇄신'이었다. 질 때마다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내렸지만 실천이 전무한 것이 문제였다.

언론과 정치평론가들은 이번에도 일제히 통합당에 주문하고 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재창당의 각오로 새 판을 짜라고, 새 시대를 대변할 새 얼굴로 혁명적 세대교체를 하라고, 정권에 협조해야 할 때를 가려가며 싸우라고 조언하고 있다. 역시 20대 총선 이후 네 번째 거듭된 훈수들이다. 2년 후 대선이다. 같은 말을 다섯번 째 듣지않으려면 지난 1월 하태경 의원의 발언부터 곱씹기 바란다. `국민은 (우리보다) 똑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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