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다
부활하다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20.04.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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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수필가
정명숙 수필가

 

시간이 멈춰 고여 있다. 쫓기듯 동동거리던 날들이 아득해지는 요즘, 앞이 차단되니 지난날의 기억들만 소환 중이다. 어린 시절을 데려오고 어른이 되어 걷던 가시밭길을 들여다보며 회한에 젖고 사랑에 빠져 눈물짓던 날들도 꺼내놓고 아쉬워한다. 그러다 조급증이 일면 어디랄 것도 없이 아프다.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 그리운 이를 볼 수 없고 나를 보고 싶어 하는 이가 있어 생긴 마음의 통증이다. 불확실한 시간들이 지나면 마주앉아 차를 나누듯 기약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도 나아갈 수 없으니 아프다. 이렇게 허드레로 아픈 날은 새싹처럼 돋아나는 기억을 덮고 무작정 걷는다.

좁은 농로에 몸을 세웠다. 마른 논배미는 작년 가을 추수를 끝으로 대부분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거름을 부리고 밭갈이가 끝난 밭들만 분주하다. 훌쩍 커버린 마늘과 양파 잎이 바람의 세기에 따라 푸른 물결로 반짝인다. 비닐을 씌운 두둑에 구멍을 내고 작물 심을 준비에 바쁜 농부들의 표정이 고요하고 깊다. 세상이 요동쳐도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농사를 짓는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고된 농사일을 하면서도 늘 조용하게 웃으시던 아버지 곁에서 논둑을 뛰어다니는 어린 계집아이의 모습이 기억 저편에서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린다.

농로를 따라 흐르듯 걷는다. 여러 동의 비닐하우스 옆을 지나는데 종일 잠잠하던 전화기가 울린다. 초등학교 친구다. 몇 달 전, 동창모임에서 받았던 수필집을 읽고 이제야 전화를 한다는 말끝에 반세기 전의 기억을 어제 일처럼 풀어놓는다.

“너는 초등학교 때 동화책이나 만화책을 끼고 다녔잖니, 선생님께서도 네가 공부시간에 만화책을 봐도 모른척하셨잖아, 지금도 눈에 선해. 글 쓰는 네가 부러워”

친구도 고여 있는 시간을 어쩌지 못해 옛일만 회상하고 있었던 것일까.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그때의 일을 어찌 그리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지 놀라웠다. 반에서 유일하게 너만 동아전과를 가지고 공부했었다는 그녀의 세세한 기억과 달리 나는 그와 몇 학년 때 한 반이었는지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그랬구나.' 만 반복한다. 서로에 대한 기억의 크기가 이토록 다를 수가 있을까. 가까운 사이는 아니라고 여겼는데 보물 같은 초등학교시절의 내 모습을 상기시켜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추억은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다. 추억을 저장하는 방법도 각기 다르다. 물건으로 보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저 기억 속에만 저장해 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친구의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었던 초등학교시절의 추억이 내 안에서 힘차게 부활하고 있다. 어린 시절은 꽃처럼 피어나는 날들이었다. 비 오고 바람 불어 스러지듯 빛나던 시간들은 지나갔지만, 기억은 밀알처럼 내 안에서 썩고 발효되어 새로운 생각으로 삶을 지탱해 주었던가. 황홀했던 순간의 추억이야말로 삶의 질곡에서 견디게 하는 가장 강력한 생존조건일터, 들길을 걸으며 삶을 물들이는 기억의 부활에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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