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앓이
봄 앓이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0.04.1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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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 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상춘(賞春)인가? 상춘(傷春)인가? 봄은 흔히 즐긴다고 하지만, 봄을 앓는 경우도 허다하다. 봄 자체야 다를 리 없지만, 봄을 맞는 사람의 처지가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봄을 즐기는 것도, 봄을 앓는 것도 다 봄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봄을 홀가분한 마음으로 맞으면 즐기는 것이고, 그것을 슬프고 근심 어린 마음으로 맞으면 앓는 것이리라.

조선(朝鮮)의 시인 신종호(申從濩)는 봄을 앓는 쪽이었다.

봄 앓이(傷春)

茶甌飮罷睡初醒(다구음파수초성) 찻잔 다 비우니 잠이 막 깨는데
隔屋聞吹紫玉笙(격옥문취자옥생) 옆집에서 옥피리 부는 소리 들리네
燕子不來鶯又去(연자불래앵우거) 제비는 오지 않는데 꾀꼬리는 또 가고
滿庭紅雨落無聲(만정홍우락무성) 뜰 가득 붉은 비가 소리없이 내리네

봄의 현상 중 하나는 춘곤(春困)이다. 아침에 일어났어도 잠은 덜 깬 상태이다. 차를 끓여 한 잔을 다 비우고 나서야 잠이 온전히 깬 느낌이 왔다. 잠에서 깨어나자 이웃에서 나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누군가 아침부터 옥 피리를 불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새벽부터 일어나 불고 있었을 테지만, 시인은 잠에 취해 듣지 못했을 뿐이다. 아름다운 봄에 상사병이 도진 사람이 그리움과 시름을 피리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고 보니 시인뿐만 아니라 그 이웃도 봄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시인도 봄을 맞이하여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데 차일피일 시간만 가고 있다. 제비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꾀꼬리는 이미 떠나고 없다. 봄이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기다리는 사람이 오기를 기대하는 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시인의 마음은 조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인의 조급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당에는 붉은 꽃잎이 가득 떨어져 쌓여 있었다. 그것도 소리 없이 말이다. 봄이 떠나가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한 시인은 이제 더 이상 조급하지 않다. 기다림의 시간은 끝난 것이라고 체념했기 때문이다.

봄은 아름답기 때문에 즐기기도 하고 앓기도 한다. 누군가와 함께 즐겨야 할 봄을 혼자 맞는 것은 큰 고통이다. 차라리 봄이 없다면 그리움에 아픈 일도 없을 것이라고 원망하는 것은 기실 원망하는 게 아니다. 봄의 아름다움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봄날이면 도지는 상사병(相思病)은 결코 아픈 것만은 아니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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