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즐기는 봄
홀로 즐기는 봄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0.03.3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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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홀로 지내는 것이 편하거나 이로울 때도 있다. 봄꽃이 피고 질 때, 떠들썩하게 여러 사람과 어울려 봄을 즐기는 것이 흔한 일이지만, 혼자서 꽃 사이에 앉아 세상을 관조하는 것도 봄을 즐기는 또 다른 방식으로 손색이 없다.

당(唐)의 시인 이백(李白)은 봄과 봄꽃을 홀로 즐기는 유형이었다.

홀로 즐기는 봄(自遣)

對酒不覺暝(대주불각명) 술을 마주하다 밤 되는 줄 몰랐는데
落花盈我衣(낙화영아의) 떨어진 꽃이 내 옷을 채웠네
醉起步溪月(취기보계월) 취하자 일어나 개울 걷는데 달 환해 보니
鳥還人亦稀(조환인적희) 새는 돌아갔고 사람 또한 드물더라.

요즘 혼자 마시는 술, 즉 혼술이 유행이지만, 따지고 보면 중국의 옛 시인 중 혼술을 즐긴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백이 그 중 대표적이다. 혼술의 장면이 유독 자주 보이는 게 이백의 시인데, 이 시 또한 그런 범주에 속한다. 꽃이 흐드러진 봄날, 시인은 술을 챙겨서 꽃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동행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혼자임이 분명하다.

시인이 봄꽃을 감상하는 법은 결코 요란하지 않다. 꽃 나무 아래서 술 마시는 것이 전부이다. 꽃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다만 날이 어두워지는 것을 모를 만큼 앉아 있었던 것으로 보아, 꽃에 심취되었음을 눈치 챌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술에 취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조용한 방법으로 봄꽃을 즐기다가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휙 지나가 버린다. 이윽고 밤이 오고, 으레 달이 떠오른다. 시인은 말하진 않지만, 독자들은 달빛과 어우러진 꽃의 환상적인 자태를 떠올릴 것이다. 시인은 꽃과 술에 취해 시간의 흐름을 잊고 있었지만, 시간의 흔적은 아주 낭만적으로 남아 있었으니, 시인의 옷에 가득 떨어져 있는 꽃이 그것이다. 이 장면은 결코 슬픈 낙화가 아니다. 무심한 듯 황홀한 낙화이다. 달이 뜨고 나서야 시인은 꽃 아래서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이미 취기가 도도하게 오른 상태로 시인은 걷는다.

물길을 따라 달과 함께 걷는다. 그야말로 무아지경의 황홀한 봄 밤인 것이다. 그런데 이 황홀함을 더 빛내주는 것은 밤의 적막함이다. 낮에 조잘대던 새들도, 꽃 구경 나온 사람들도 모두 돌아가고 없는 것이다. 시인에게는 훼방꾼이 사라진 것이리라.

꽃이 피고 지는 것은 자연현상에 불과한 것이지만, 사람들의 느낌은 훨씬 더 복합적이다. 사람들과 어울려 봄꽃을 감상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홀로 꽃 아래에 자리를 펴고 앉아, 술 한 잔 하면서 즐기는 것도 또 다른 봄꽃 감상 방법이다. 후자는 세상에 대한 관조가 선사하는 평온함마저 덤으로 맛보게 하니, 더욱 매력적이지 않은가?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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