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의 정기가 서린 소나무(鳳凰松) 이야기
봉황의 정기가 서린 소나무(鳳凰松) 이야기
  •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 승인 2020.03.23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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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정체성이란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로 나아가고 있고 자신에게 맞는 집단이나 사회는 어디인가 또는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말한다. 심리학자 에릭슨(Erikson, 1950)은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를 자기 존재에 대한 의문이 강해지면서 정체성 혼돈과 위기를 겪는 청소년 시기에 형성된다고 보았다. 때문에 청소년기에 자기 존재의 확실한 인식과 자긍심을 심어주는 역사교육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울러 이 시기의 역사교육은 공동체의 정체성 형성과 애국적 국민 양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특히 자신이 살고있는 지역사는 공공 기억을 토대로 인권과 민주주의와 평화 교육, 그리고 공동체가 지향하는 보편적인 가치를 실현하는데 기여할 수 있으므로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만 한다.

청주시에서 대표적인 공단지역 봉명동에 노송 한그루가 수백 년의 역사를 기억하며 우뚝 서 있다. 400년이 넘는 세월을 묵묵히 현재의 위치에서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이 소나무는 식목한 시기와 사연이 정확하게 기록으로 전해지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귀중한 나무 중의 하나이다.

이 소나무가 이곳 봉명동 산 어귀에 심겨진 사연은 신진사대부로 이성계를 도와 개국공신 1등으로 의성군에 봉해진 강무공 남은 선생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선생의 5세 손인 어모장군 남홍이 1540년에 낙향하여 청주 봉명동 일대에서 살았다. 세월이 흘러 12세손인 응호와 응수 두 형제가 오순도순 이곳에 의령남씨 집성촌을 형성하면서 형인 응호가 공조판서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얼마 후 응호의 아들 대현이 19세(광해군 10년 1618년)의 나이로 무관에 장원급제하였다. 응호와 응수 형제는 이런 경사스런 날을 기념하여 1621년에 소나무를 한그루 심었는데, 그 소나무가 현재 봉명2송정동사무소 앞 송정경로당 마당에 장엄하게 서 있는 `봉황송(鳳凰松)'이다.

세월이 400년이 흘러 1991년에 청주시가 이 소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하고 온 마을의 자랑으로 삼았는데, 2018년에 `봉명2송정동400년생소나무명명추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4,000명이 넘는 주민이 참여한 이 위원회에서 봉황송이라는 이름을 확정하고 7월 14일 명명식과 함께 생일로 정하여 마을의 상징으로 보존하기로 한 것이다.

`봉황은 새 중의 으뜸이요 백봉산 자락에서 대나무 열매를 먹으며 힘차게 울었다는 전설이 있어 봉명동이니 봉황송이란 이름은 비단에 꽃을 얹은 격이다. 의령남씨는 대를 이어 장원급제하였고, 고을에 인재가 그침이 없으니 봉황송 정기의 덕이다. 봉황새 울던 백봉산에서 문무를 연마하던 선현의 뜻과 400년 꿋꿋이 하늘을 우러러 용틀임하는 봉황송 숨은 덕으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 지혜와 덕성을 지진 인재가 년년세세 무궁무진함을 소망한다.'라고 봉황송의 유래비에 적혀 있다.

마을과 지역의 자랑인 이 봉황송을 지역의 역사교육장으로 활용할 수 있길 소망한다. 특히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장소를 수업의 중심에 두고 수업을 한다면 학생들이 자신의 삶과 직접 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는 지역의 역사를 학습함으로써 학생 스스로가 역사적 주체로서 자각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지역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지역주민과 함께 역사적 정체성을 살리고 아울러 내면화 함으로서 정체성 함양은 물론 지역사회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설 수 있으며 참여의식도 성숙 되는 기회가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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