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리는 세 마디 말
사람을 살리는 세 마디 말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0.03.1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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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인터넷에 회자되던 이야기를 최근 다시 듣게 되었다. 서울 용산의 할머니 국숫집에 대한 이야기다.

1997년 IMF로, 운영하던 회사는 물론 집과 가족까지 잃게 된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친척 집과 친구 집을 전전하다가 싸구려 여인숙에 유숙할 돈마저 없어지자, 결국 노숙자가 되어 용산역 앞을 배회했다. 너무 배가 고파서 참을 수 없을 때는 역 앞의 식당들을 찾아가 구걸을 해 보았지만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다. 어떤 식당에서는 두들겨 맞기도 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개를 풀어서 내쫓기기도 했다.

사흘쯤 굶은 어느 날, 그는 어느 골목의 허름한 국숫집에서 할머니가 국수를 삶고 있는 것을 보았다. 국수가 얼마나 먹음직스럽게 보였던지, 그는 무작정 국숫집으로 들어갔다. 사실 안 주면 빼앗아 먹어야겠다고까지 생각했다. 할머니는 그의 남루한 몰골을 보고서도 웃으며 환대했다. 할머니가 가득 담아 주는 국수를 허겁지겁 먹고 있는데 할머니는 국수 그릇을 빼앗아 가더니 국수 한 그릇을 다시 담아 주었다. 처음보다 더 많은 양을 말이다.

국수를 다 먹어 가자 그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원래는 당연히 돈이 없다고 배라도 째라고 강짜를 놓을 생각이었지만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다른 국수를 삶는 틈을 타서 그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다. 그렇게 줄행랑을 치고 있는데 뒤에서 외치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단 세 마디, “그냥 가! 뛰지 말어. 다쳐요.” 그는 당연히 “어디 가?, 거기 서. 돈 내놔!” 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할머니는 자신이 돈을 내지 못할 줄 알고도 따뜻하게 그를 대접해 준 것이었다. 그는 용산역 앞에서 한없이 울었다. 그리고 얼마 후 파라과이로 이민을 떠난 그는 15년 만에 재기하여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냥 가! 뛰지 말어. 다쳐요.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데 필요한 말은 딱 세 마디였다. 그 사람이 꼭 듣고 싶었던 말, 상대의 상황을 배려하고, 조건 없이 내어주는 마음, 그것이 노숙자로 자포자기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사람을 살리고 변화시켰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꼭 실천해야 할 항목이라고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만나야 할 사람을 못 만나고,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면서 사람들은 우울감을 호소하기도 하고, 무엇을 해도 신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코로나19 때문에도 힘이 드는데, 말실수를 포함하여 이런저런 말들로 인한 상처 역시 우리를 힘들게 한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마음을 지키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바이러스를 이기고, 면역을 갖추어 건강을 되찾는 힘을 얻으려면 마음을 잘 챙기고 간수해야 한다.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하니 말이다. 마음 챙김,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시작은 노숙자를 일으켜 세운 세 마디의 말에서부터 일 것이다. 말 한마디, 작은 행동 덕분에 한 사람의 인생이 일어나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한다. 옆 사람을 돌아보고, 전화로, 문자로, SNS로 상대의 상황을 배려하며, 조건 없이 마음을 내어 줄 때, 그 말을 듣는 상대의 마음은 물론이고, 내 마음까지 포근해지고 따뜻해진다. 결국 세상이 따뜻해지고 우리는 힘을 얻는다.

여든여섯의 나이로 여전히 국수를 삶는 그 할머니는 육수를 끓일 때마다, 국수를 먹는 이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기를 빈다고 한다. 국수 한 그릇에 담긴 뜨끈한 힘, 오늘 내가 있는 자리에서도 뜨끈한 힘을 건네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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