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해
수상해
  •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 승인 2020.03.16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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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수상하다. 무언가 의심스러운 것이 있을 때 자주 하는 표현이다. “수상한 데~”말하면서 친구의 비밀스런 일상을 묻기도 하고 내 주변의 일을 추적해보기도 한다. 그런 수상한 조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적인 느낌이 감지될 때 우리는 알아챈다. 공기가 묘하게 다르다거나, 사람들의 표정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수상한 포인트가 그런 상황 중의 하나다.

가끔은 그런 수상한 일들이 일상의 재미를 준다. 아이에게 선물을 감추어 놓고 깜짝 파티를 해주거나,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고 밤늦도록 친구랑 논다거나 하는 재미있는 수상한 일들을 만든다.

하루 종일 비워두었던 집에 들어올 때 누군가 다녀간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침에 분명 수건을 아무렇게나 집어던진 것 같은데 곱게 의자 위에 올려져 있고 탁자 위에 두었던 인형의 위치가 미묘하게 달라진 것 같다. 우렁각시가 왔다간 것이고 좋겠다며 헛웃음을 짓지만 무언가 수상한 일로 기억에 남는다.

이런 나의 마음들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 `수상해(슷카이 글, 그림·창비·2019)'이다.

아침마다 아빠가 준 초록색 건강 야채주스도, 일하고 들어온 엄마 옷에서 나는 냄새도, 할머니가 만들어주는 맛있는 음식도 수상하다. 호기심 많고 의심 많은 아이는 모든 것이 수상하다. 그중에서 가장 수상한 것은 한 아이를 만날 때 두근대는 마음이다. 한 페이지 가득 써져 있는 `두 근'글씨가 읽는 내 마음도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느끼게 한다.

지구가 하루에 한 바퀴 돌고, 일 년에 한 번 태양을 한 바퀴 돌고 비 온 뒤에 생기는 무지개 등 모든 것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어른이 되었다. 그럼에도 조금 수상하다. 지구가 하루쯤은 안 돌고 싶을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어제는 지구가 천천히 돌고 그만큼 오늘 지구가 더 빨리 도는 건 아닐까? 이런 쓸데없는 의심과 상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수상한 것들에 대한 알아차림과 의심이 내 삶을 조금 더 재미있고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아이들의 수상한 낌새를 알아보고 아픈 곳을 점검하거나 함께 어울려 모른 척 장난을 즐긴다. 남편의 수상함은 가끔 눈감아 준다. 나를 위해 준비한 어설픈 깜짝 파티는 그만큼 놀래줘야 제 맛이다. 이런 사소한 수상함들이 모여 행복이 되고 추억이 된다.

아이들은 수많은 수상한 것들에 대한 사실과 본질을 깨달으면서 자랄 것이다. 아빠가 준 초록 주스는 맛있는 케일이 들어간 것이고, 늦게 들어온 엄마의 냄새는 업무에 지친 일상이라는 것임을 말이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수상해하는 호기심 어린 마음은 조금 천천히 자라길 바라본다. 그 엉뚱한 수상함이 주는 재미를 늦게까지 느끼고 즐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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