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의 젓줄 의림지
제천의 젓줄 의림지
  •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 승인 2020.03.1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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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시선-땅과 사람들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역사문화경관적 가치가 뛰어나 명승 제20호로 지정된 제천 의림지. 제방의 규모는 길이 320m, 높이 12m, 너비 45.7m로 총 저수량은 501천㎥, 수혜면적은 187㏊에 이르는 제천의 젖줄이다. 김제 벽골제, 상주 공검지,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저수지일 뿐 아니라 농경문화의 원형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농경관련 유적지다. 그런 이유로 의림지는 중,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삼한시대의 대표적인 농경문화유적지로 서술되기도 하였다.

충청도지방의 별칭인 호서(湖西)라는 말도 이 의림지를 기준으로 불렀다는 견해도 있다. 제천의 옛 이름인 내토(奈吐), 대제(大堤), 내제(奈堤), 의천(義川), 의원(義原) 등도 모두 큰 둑이나 제방을 의미하거나, 의림지를 뜻하는 명칭에서 유래한 것이다.

의림지 주변에는 우륵과 관련된 전설과 우륵당(于勒堂), 우륵정(于勒井), 연자암(燕子巖), 돌봉재[石峰] 등의 유적이 있다. 조선 후기의 산수화가 이방운은 직사각형의 의림지에 2척의 배를 띄우고 낚시하는 모습을 그린 풍경화를 남겼다. 이처럼 의림지는 저수지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언어, 전설, 그림 등 역사적 장소로서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이 큰 규모의 인공저수지인 의림지는 언제, 어떻게 축조한 것인가? 의림지의 축조시기에 대해서는 3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삼한시대 축조설, 둘째, 삼국시대 우륵에 의한 축조설, 셋째, 조선시대 축조설이 있다. 이 설은 학술적 조사결과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닌 옛 지명과 구비전승을 바탕으로 한 추정이기에 끊임없이 논란이 이어져 왔다.

이런 논란을 해결하고 의림지에 대한 역사성을 밝히기 위한 정밀학술조사가 1999년에 처음 실시되었다. 고고, 역사, 지질, 군락 등 관련 학문분야에서 본격적인 학술조사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의림지에 여러 개의 드럼통을 엮어 띄워놓고 물리탐사와 시추조사를 하였다. 내부 퇴적물의 연대측정 결과 약 960년 전의 연대값을 얻었다. 이는 의림지 축조시기에 대한 최초의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후 2009년 추가 시추조사를 통해 AD 800년 전후의 연대값을 얻었다. 또한 2012~2013년에 제방 바깥쪽에 대한 학술조사에서 짧은굽다리접시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제방을 완전히 절개하여 최초 축조시점의 자료를 분석할 수 없는 한계가 있으나 지금까지 얻은 고고학적 자료와 연대값으로 보면 의림지의 축조시기는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듯싶다. 기록이 남아 있어 축조연대가 분명한 영천 청제(菁堤, 536년)와 제방의 입지, 제방의 유형, 제방의 규모 등 서로 비교되어 주목된다.

의림지 축조는 용두산(871m)에서 뻗어내린 계곡부의 양쪽 능선이 평지와 거의 맞닿은 최단거리에 제방을 쌓아 노동력을 최소화하면서도 저수용량을 극대화한 점이 특징이다. 제방축조는 제방의 가라앉음을 방지하고 기초지반의 안정대책으로 지름 30~50㎝의 큰 나무 말목을 박아 기초를 튼튼히 하였다. 이후 제방의 밀림과 가라앉음을 방지하기 위해 찰흙을 덮고 다진 후 나뭇잎 등의 식물유기체를 깐 다음 찰흙과 식물유기체를 번갈아 일정 높이까지 쌓아 올렸다. 이를 부엽공법(敷葉工法)이라 한다. 연약지반에 제방이나 성벽을 쌓아올릴 때 흔히 사용되는 축조공법이다. 이 공법으로 쌓은 높이가 4m에 이른다.

의림지 제방은 1972년 8월 18일~19일 제천지역에 내린 집중호우(462㎜)로 서쪽 제방이 붕괴되는 큰 사고가 있었다. 당시 충분한 학술자료를 확보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주변여건과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고도의 토목기술로 축조한 의림지는 우리나라 농경문화의 시원을 찾는데 실마리를 줄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기념물로서 자리매김할 것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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