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효과:어떻게 빠져나와야 하는가?
터널 효과:어떻게 빠져나와야 하는가?
  •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 승인 2020.03.12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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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자동차로 어두운 터널을 빠른 속도로 달리면 터널의 출구만 동그랗게 밝게 보이고 주변은 온통 깜깜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전투기 조종사가 비행기를 수직으로 급상승시키면 앞쪽 가운데 부분을 제외한 주변부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지는데 이를 터널시야 현상이라 부른다.

심리적인 터널시야 현상도 있다. 어떤 심리적인 기제로 인해 주의력과 정보처리능력 등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판단을 그르치는 현상이다. 심리적 터널 시야 현상에 사로잡힌 경찰이 사건을 수사하는 경우 수사관은 대개 사건에 대해 예단을 미리 한다. 그러면 자신이 내린 결론에 부합하는 증거만 받아들이고 어긋나는 증거는 무의식적으로 제쳐놓는다. 자칫 중요한 단서를 놓치기 쉽다.

이런 성향은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심각한 결과를 빚는다. 좋게 말하면 집중력이 높고 끈기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와 단절된 자기만의 세계에 살 수 있다.

엘리트 청년이 자살폭탄 테러리스트가 되고 사이비 이단에 빠졌다. 한 평범한 젊은이들을 이렇게 변모시킨 것은 과연 무엇일까? 심리학자 오카다 다카시는 그의 저서 `심리조작의 비밀(2016)'에서 이를 터널효과로 설명한다.

평범한 젊은이들이 변한 이유를 푸는 열쇠는 터널이라는 장치에 있다는 것이다. 터널은 가늘고 긴 통로로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되어 있다. 입구에 들어가면 출구까지 빛이 없다. 터널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외부세계로부터 차단된다는 점과 시야를 작은 한 점에 집중시킨다는 점이다. 터널을 빠져 지나는 동안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차단되고, 출구라는 한 점을 향해 가는 와중에 어느 지점에서 시야가 좁아지는 시야 협착증상이 나타난다. 이 두 요소가 평범한 젊은이들을 수백 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테러범으로 변모시키거나 꿈과 생업을 포기한 채 사이비 이단에 빠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 극단적 테러리스트가 되거나 사이비 이단에 빠지는 과정은 간단하다. 터널에 집어넣으면 된다는 것이다. 외부와 차단된 곳에 장시간 두면 시야 협착증상으로 시야가 좁아지고 한 가지 출구로만 걸어가게 된다.

터널, 이 터널은 어디에도 존재할 수 있다. 우리는 일찌감치 좁은 교실에서 명문대학 입학과 성공이라는 한가지 목표로 교육을 받는다. 대학과 성공이라는 지점에만 목적을 두는 게 마치 터널 구조와 같다. 대학에 가면 또다시 취업 준비를 위해 스펙 쌓기에 열중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터널에 익숙해 있는지 모른다.

터널을 만드는데 다양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이단 사이비 단체들이 새로운 터널을 그들에게 제시했을 때 너무나도 쉽게 그 터널로 들어가는 게 심리적으로 그렇게 이상한 구조는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엘리트, 지식인일수록 터널 속에서 살아온 세월만큼 다른 터널을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심리가 내재하기 때문이다.

이단·사이비에 빠지는 사람들에 대해 이성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단·사이비 종교의 타깃은 엘리트 계층인 경우가 많다. 지하철에 독가스를 살포해 500여명의 사상자를 낸 일본의 옴 진리교의 중앙 멤버들이 모두 일본의 상위권 대학 출신이라는 점이나 국내에서 ○○교 초기 신도들도 국내 유명 대학의 교수들이라는 점은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호흡기 감염병으로 우리는 지금 사회적 재앙을 겪고 있다. 누구의 잘못을 따지지 못할 상황이지만 소위 이단·사이비 단체로 인한 재앙의 파급은 우리의 일상을 정지시켜 버렸다. 감염병은 옮는 병이다. 심리적 터널도 어디에나 존재하며 옮겨간다. 터널의 소멸을 위해서는 모든 종류의 사회적 소통이 가동되어야 하며 자신과 타자들을 거부하지도 맹신하지도 말아야 한다. 함께 있으면서 끊임없이 생각과 행동을 나누면서 다름과 같음을 재고 또 재야 한다. 고립시키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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