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담 시골살이
청마담 시골살이
  • 엄남희 두봉㈜농업회사법인 대표
  • 승인 2020.03.0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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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칩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엄남희 두봉㈜농업회사법인 대표
엄남희 두봉㈜농업회사법인 대표

 

새벽을 가르는 수탉의 앙칼진 울음에 잠 깼다. 부지런한 이웃 어르신의 탕탕거리는 경운기 소리가 아직 이불 속에서 뒹굴뒹굴하고 있는, 부스스한 나를 흠칫하게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휴대폰을 잡아당겨 일정을 살피고 날짜를 확인했다. 3월 5일, 잠자던 벌레와 개구리가 놀라 깨어난다는 경칩이다. 경칩은 동면에 들었던 동물들도 깨어나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는 날인데, 지난밤 이곳 뜨렌비에는 사륵사륵 눈이 내렸다. 찬 기운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떠나려던 겨울이 심술을 부리는 모양이다. 이번 겨울엔 눈이 적게 내려 아쉽기도 했지만 경칩에 만나는 눈은 어쩐지 어색하기만 하다. 다가오는 봄을 시샘하여, 떠나가는 찬 겨울의 최종 발악이지 싶다. 창문을 열었다. 싸늘함이 훅! 들어온다. 어제까지만 해도 포근했던 기온이었는데 오늘은 바람이 따갑고 얼굴이 시리다.

24절기 중 하나인 경칩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들은 번식기인 봄을 맞이하여 고여 있는 물이나 논 웅덩이에 알을 낳는데, 그 알은 허리 통증에 좋을 뿐 아니라 몸에 좋다 하여 경칩 일에, 개구리 알을 건져 먹는 풍습이 전해 오기도 했단다. 지역에 따라서는 도롱뇽 알을 먹기도 했다는데, 너나 할 것 없이 환경보호에 힘써야 하는 요즘에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큰일 날 일이다.

또한,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경칩에는 동물뿐 아니라 식물도 깨어나는 시기이다. 지난가을 씨 뿌려 싹이 난 밀과 보리, 시금치 등 월동에 들어갔던 채소들이 물올림을 시작하게 되고, 이맘때 농부는 거름을 내며 밭을 갈기 시작한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주변을 돌아보면 일찌감치 비닐 멀칭을 끝내놓은 곳도 더러 있다.

햇볕이 따스해지고,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리는 경칩은 장 담그는 계절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 장이란, 그 쓰임새도 다양할 뿐 아니라 삼시세끼 밥상에 빠질 수 없는 찬이자 양념이기도 하며, 1년 농사라 여겨질 만큼 각 가정에서 중요하게 다루었다. 옛 어른들은 대부분 음력 정월 중, 손 없는 날인 말날을 택하여 장 담그기를 했는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요즘은 그런 것 따지지 않고 편리하게 이맘때쯤 맑은 어느 날을 선택하여 담는 경우도 많아졌다. 장 담그는 방법은 대동소이하나, 그 결과물인 장맛은 집집이 다를 뿐 아니라, 빛깔 또한 다양하게 나타난다. 좋은 장을 만들기 위한 비결 중 하나는 무엇보다 주재료인 콩과 소금, 물이 좋아야 하며, 두 번째로 만드는 이의 정성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장은 깨끗이 닦아서 여러 날 우려내고 햇볕에 바짝 말려 준비한 독에 세척한 메주를 넣은 후, 체에 내려 거른 소금물을 1시간 이상 가라앉혀 메주가 잠길 정도로 붓고 참숯, 고추, 대추 등을 함께 넣는데, 참숯은 살균 작용을 하고 고추와 대추는 장의 색과 맛을 더해 주며, 붉은색은 악귀를 쫓아낸다고 믿었다. 또한, 우리 어머니들은 장을 담근 장독에 왼새끼를 꼬아 솔잎, 고추, 한지를 끼운 금줄을 쳐서 잡귀가 들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항상 깨끗하게 장독을 닦아 유지하고 장맛을 지켰다. 이렇게 담은 장은 40~50여일이 지난 뒤, 장물과 메주를 가르기 하여 간장과 된장으로 숙성시킨다.

경칩은, 바야흐로 농부의 손길이 바빠지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절기이다.

이웃 어르신께서 거름을 내시는 모양이다. 반복되는 경운기 소리를 듣다 보니 괜스레 마음이 바빠진다. 서둘러 농장 주변도 정리해야 하고 파종할 씨앗도 정리해야 되겠다. 주말엔 미뤄뒀던 거름도 내야 하겠고 트랙터 들어가기 쉽도록 미리 살펴놔야 하겠지.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오늘은 아침 먹고 당장 아로니아 전지부터 해야겠다. 갑자기 마음이 몹시 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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