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불 속에 내린 서광
덤불 속에 내린 서광
  •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 승인 2020.02.1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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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봄비라고 부르기에는 이른 날, 메마른 대지에 비가 내린다. 코로나바이러스로 공포에 떨고 있는 우리에게도 단비가 내렸다. 영화 “기생충”은 단비보다 한 품격 높여 감로수로 우리 곁에 스며든다. 한국 하층민의 삶을 다룬 영화가 세계무대에서 주목을 받을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삶의 의욕이 저하된 우리에게 시기적절하게 등장한 “기생충”이 우리를 꿈틀거리게 한다. 정말 감동이다.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혜성같이 나타난 영화 “기생충”이 비영어권에서 하나도 받기 어려운 상인데 4관왕의 주인공이 되었다니 믿어지지 않은 꿈같은 이야기이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말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것을 실행한 봉준호 감독이 이 시대 영화계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기생충”은 처음, 최초, 최고란 타이틀로 찬사를 받으며 온 국민을 흥분시켰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받은 각본상, 외국어영화상이 국제영화상으로 이름이 바뀐 뒤 처음으로 받은 국제영화상, 백인들의 잔치라고 비난받았던 작품상, 감독상을 받았다. CNN뿐만 아니라 전 세계 미디어에서 “기생충”이 오스카의 역사에 남게 되었다며 문화예술 코너에 도배할 정도이다. 방탄 소년(BTS)과 더불어 영화 “기생충”은 한국의 위상뿐만 아니라 얼어있는 경제에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할 것으로 예상한다. 우한 폐렴으로 덤불 속 같은 요즘, 한줄기 서광이 아닐 수 없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면서 21세기는 문화예술이 정신적 경제적 지렛대가 되어 우리 사회를 훈훈하게 해 줄 것으로 믿는다.

예술이 대중에게 아첨하면 세상에 발전이 없고, 물질이 말하기 시작하면 영혼이 문을 닫는다는 예술가의 가치를 시대성에 부합해 재해석해 본다. 봉준호 감독이 좋아하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말한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 예술가의 삶이 아닐까? 문화예술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문화예술을 하나의 단위로 볼 것인가 아니면 문화와 예술을 개별 단위로 볼 것인가에 따라 의미도 달라진다. 문화가 개인보다는 집단적이며 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물질과 정신이 낳은 산물이라면, 예술은 집단보다는 개인의 독창성과 창조성이 끊임없이 추구되는 정신적 산물이다.

BTS의 노래나 영화 “기생충”과 같은 대중 예술이 세계적으로 이슈화되는 시대, 문화예술의 꽃이자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는 문학은 아직도 변방에 “기형아”로 자리하고 있다. 다양한 예술 장르가 융복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시대, 글말과 입말로 된 언어를 어떻게 활성화해야 세계인의 정신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언어를 매개로 하는 문인들의 세계가 우물이 되어서야 하겠는가? 우리의 정신문화가 깃든 문학 작품이 누군가에 의해 세계무대에서 눈과 정신을 사로잡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어떤 장르의 예술이라도 인간이 추구하는 극치의 세계, 진리를 추구하는 영혼의 세계는 美이다. 여기서 말하는 美는 인간의 정신을 감동하게 하는 내면의 세계이다. 우리는 예술이 과학과 달리 허구로 위장되어 진실이 결여되었다고 오해를 한다. 허나 문학은 우리 곁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이 내포되어 있어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이라고 가히 말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 불평등하다고 부르짖는 서민의 삶은 결코 슬프지 않다고 “기생충”이 대변하는 것처럼. 비영어권에서 아카데미 4관왕이 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우리 미래 세대들에게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단비는 하루가 지나기 전에 멈췄지만, 영화 “기생충”은 세계인들에게 화젯거리로 오랫동안 오르내리겠다. 한국의 정신과 얼이 깃든 예술 작품이 장르별로 세계무대에서 왕성하게 활보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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