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에게서 배우는 청렴
충무공에게서 배우는 청렴
  • 김찬호 청주시 흥덕구 민원지적과 주무관
  • 승인 2020.02.09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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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 청주시 흥덕구 민원지적과 주무관
김찬호 청주시 흥덕구 민원지적과 주무관

 

심심찮게 매스컴을 통해 공무원 조직 일부의 일탈행위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그러면서 공직자의 올바른 자세로 청렴을 지키라 하는데, 과연 청렴의 뜻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적용될까?

청렴은 한자로 淸廉이다. 앞의 淸(청) 자의 뜻은 맑다, 깨끗하다, 탐욕이 없다 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고 廉(렴)은 청렴하다, 결백하다, 검소하다 등의 뜻을 지니고 있으나 廉(렴)은 원래 청렴하다 또는 검소하다 등의 뜻을 지닌 글자가 아닌 집안의 모퉁이나 구석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고 한다.

후에 모난 성격을 가진 사람에 비유됐으나 모난 사람은 자기 소신대로 사는 사람에 비유되면서 청렴하다, 검소하다는 뜻을 갖게 됐다고 한다.

우리나라 선조들을 봐도 청백리들은 자신만의 소신을 지키며 살았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고려, 조선시대에는 청백리 제도가 있어 사헌부, 사간원 등의 검증 절차를 거쳐 뽑혔고 승진을 하거나 후손들은 벼슬길에 나가는 특전도 있었다고 한다.

나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소개하고자 한다. 서울 건천동 부근에서 태어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승마 도중 넘어져 다친 다리를 버드나무로 동여매는 등 고생 끝에 32세에 무과에 급제해 공직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수군만호로 재직 중에는 직속상관인 전라좌수사가, 관사에 있는 수령이 오래된 오동나무를 베어 거문고를 만들려고 하자 관사에 있는 나무는 사사로이 써서는 안 된다고 반대해 나중에 좌천성 인사를 당하게 됐다. 이는 그의 이름을 알리는 사건이 됐다.

이처럼 곧은 성품을 지닌 이순신 장군은 상관들의 미움을 받아 함경도 국경 근무 당시에 첫 번째 백의종군을 하게 됐으며 관직생활에서는 여러 지장을 받았지만 꿋꿋이 자신의 소신을 지켰으며 초급 장교 시절 이조판서 이이와 만날 기회가 있었으나 인사권을 가진 이를 만나는 것이 좋게 보일 리가 없다며 거절한 일화도 있다고 한다.

아부하는 성격이 아니고 우직한 편이기 때문에 안 당해도 될 불이익을 많이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자신의 본분에 묵묵히 임했으며, 임진왜란 중에는 중앙정부의 지원도 받지 못했지만 자급(自給)해 병력을 유지했고, 원균이 칠천량 전투에서 대패해 전세(戰勢)가 어렵게 돌아갔으나 남은 군사들을 수습해 승전을 이뤘고 백성들을 잘 보살피고 다스려 칭송을 받아 목민관으로서도 훌륭한 면모를 보였으며, 충성심과 업적으로 적국인 일본에서조차 숭배의 대상에 올랐다고 한다.

중앙정부에서 지원은커녕 갖은 모함과 추궁을 당해 배신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으나 묵묵히 전쟁을 준비하며 휘하 군졸들과 백성들을 잘 다스렸다. 이러한 따뜻한 면도 있지만 병영에서 탈영병을 잡아 참수하는가 하면 기강을 잡을 땐 가차 없는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고 휴가철에는 국가에서 지원한 쌀 포대를 가져갔다 남은 쌀을 그대로 가지고 돌아온 일화도 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융통성 없고 우직한 성격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목민관으로서 이순신 장군의 청렴은 공직자의 배울 점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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