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엄상수 5
향엄상수 5
  •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 승인 2020.01.30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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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잠을 깨고 밖을 바라보니 뜰 앞의 나무가 푸르구나.

무엇을 얻고 또 무엇을 잃었는가?

바람은 오고 구름은 간다.



반갑습니다.

무문관(無門關) 공안으로 보는 자유로운 선(禪)의 세계로 여러분과 함께하는 괴산 청천면 지경리 청운사 여여선원 무각입니다.

제가 상주하고 있는 산골 초암에는 새해의 맑은 기운이 온 도량에 넘쳐나고 있네요.

이 시간에 살펴볼 공안은 진퇴양난형 공안인 무문관 제5칙 향엄상수(香嚴上樹) 5입니다.

향엄상수의 장에서 마지막으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요. 그것은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있는 스님이 지금 침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오해입니다. 이런 오해를 품고 있는 한 여러분은 아마도 무문관의 다섯 번째 관문을 결코 통과할 수 없을 겁니다. 이것은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있는 스님이 자신의 입에만 의지하여 스님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는 것인데요. 여러분은 이 스님이 손도 쓰지 않고 발도 쓰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스님은 바로 구업의 화신으로 계속 입에만 의존하고 있으면서 침묵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남의 이야기나 남의 이론을 들어줄 수 있다는 수용능력은 하나도 있을 수 없는 일일 겁니다. 그는 지금 입을 쓰지 않으면 떨어져 죽을 것만 같은 심정으로 나무에 입으로 매달려 있는 상황이니까요. 그러니까 아마도 입에 의존하지 않는 순간 그는 높은 나무에서 떨어져 죽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보다 존경스러운 사람이 그 스님에게 예를 들어 이런 대답을 요구합니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무엇인가?”라고 이렇게 물었을 때 이에 대해 반드시 대답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이 스님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님은 우선 손과 발로 나무줄기를 튼튼히 잡은 후에 조심조심 나무에서 내려와야만 할 것입니다. 그런 연후에 땅에 발을 디디면 된다는 말입니다.

그 후에는 자신에게 질문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되겠지요.“아까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에 대해 물으셨나요?”라고 말입니다. 바로 그 순간 스님은 자신의 입에만 의존하지 않게 될 것이니 이것이 바로 하나의 깨달음이라 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이제 그는 입에만 의존하는 삶에서 벗어나 기꺼이 침묵할 수도 있는 경지에 이른 것이니까요. 여기에서 나무는 말의 쟁점을 상징하는 하나의 희론(戱論)이였던 건데요.

깨달음이란 바로 얻는 것이 아니라 모름을 얻는다는 것을 뜻하지요. 깨달음은 생각이 내려지고 마음으로부터 밝아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태어난 이후의 앎에서는 멀어지고 태어나기 이전의 모름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뜻하지요.

경자년 새해에는 여러분 모두에게 경사스러운 일도 많이 생기고 항상 여일하시길 기원드립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살펴보고 다음 시간에는 무문관 제6칙 세존염화(世尊拈花)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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