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 승인 2020.01.0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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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새해가 시작되었다. 모두 많은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계획한 그 일을 할 때에 일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면 끝까지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어떠한 사업이든 혹은 어떠한 종교이든 마찬가지다. 원불교 경전의 첫 번째 말씀은 원불교의 `개교의 동기'이다. 쉽게 말해 원불교라는 종교를 열게 된 이유이다. 이유는 목적과 통한다. 원불교를 열게 된 이유를 다른 말로 하면 원불교의 목적이다.

`현하 과학의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물질을 사용하여야 할 사람의 정신은 점점 쇠약하고, 사람이 사용하여야 할 물질의 세력은 날로 융성하여, 쇠약한 그 정신을 항복 받아 물질의 지배를 받게 하므로, 모든 사람이 도리어 저 물질의 노예 생활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생활에 어찌 파란 고해(波瀾苦海)가 없으리요. 그러므로,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 받아, 파란 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園)으로 인도하려 함이 그 동기니라.'(원불교 정전 중 개교의 동기)

원불교의 목적은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 받아' `광대무량한 낙원'에서 다 함께 잘 사는 것이다. 원불교는 간단하고 명확한 것을 좋아한다. 더 간단하게 표어로도 만들었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원불교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은 `물질이 개벽'되었고, `물질이 개벽'하는 중이니, `정신을 개벽'하기 위해서이다.

현대인들의 모든 폐단은 그 뿌리를 찾아보면 결국 물질만능주의에서 비롯됐다.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물질(돈)이 되면서 사람들은 끝이 없는 갈증과 고통 속에서 살게 됐다. 원불교에서는 물질을 버리고, 욕심을 비우고, 모든 것을 버리고 자연인으로 돌아가 살라고 말하지 않는다. 원불교는 주(主)와 종(從)을 이야기한다. `주'가 되어야 하는 것이 있고, `종'이 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물질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물질이 주(主)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신이 주(主)가 되어야 한다. 정신이 주(主)이고 물질이 종(從)이다. 정신이 주(主)일 때에야 물질을 선용(善用)할 수 있다.

모든 가치 중에서 가장 중요시되고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정신이다. 원불교에서 말하는 정신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정신의 개념보다 조금 더 크다. 마음의 개념도 들어 있고, 성품의 개념도 들어 있으며 나아가 진리의 개념도 들어 있다. 물론 일반적인 정신의 개념도 포함되어 있으니 어려우면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내 정신은 바쁘기만 하다. 더 좋은 스마트폰이 갖고 싶고, 스마트폰으로 볼 것도 많고, 게임도 해야 한다. 스마트폰 속 세상은 온통 갖고 싶은 것뿐이다. 아직 어림도 없지만 언젠가는 빨간색 스포츠카도 사고 싶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냥 돈이 아니라 많은 돈이 필요하다. 나는 열심히 일할 것이다. 스포츠카를 사려면 지금 이렇게 놀 시간이 없다. 대리 알바라도 뛰어야 한다. 나는 빨간 스포츠카를 할부로 사려 한다. 한 달에 200만 원씩 5년만 내면 된다. 나는 그렇게 (필요도 없는) 빨간 스포츠카를 위해 5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기로 한다.

당신은 지금 무엇의 노예로 살고 있는가? 빨간 스포츠카는 아니더라도 정말로 노예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무엇이든 노예생활을 청산하고 싶다면 정신을 개벽하라.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 받아 광대무량한 낙원에서 살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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