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글씨(1)
예쁜 글씨(1)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0.01.02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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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의사를 전달함에 있어서 그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다. 말로 할 수가 있는가 하면 글로 쓰기도 하고 수화나 몸짓으로도 한다. 말로 할 때는 직접 만나서 얼굴을 마주 보고 하기도 하지만 전화를 이용할 수도 있다. 통신기술이 발달한 요즘은 편지, 혹은 전화도 메시지나 영상통화로 소통한다.

이따금 아들에게 편지를 받는다. 전화나 메시지로 받을 때와는 전혀 다른 커다란 감동을 한다. 생일날, 연말, 결혼 등 특별한 날 주로 받는데 편지를 받을 적마다 글씨를 보고 깜짝 놀라곤 한다. 180키에 10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큰 덩치가 무색하리만큼 글씨는 깨알이다. 또박또박 박은 듯 작은 글자는 정갈하다. 솥뚜껑 같은 큰 손으로 어쩌면 이렇게 작은 글씨를 쓸까 의아하다.

30여 년간 글을 써오면서 지금도 원고지에 쓰는 게 편하고 시상도 잘 떠오르는 것은 오랜 습관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아들과는 반대로 내 글씨는 매우 크고 악필이다. 천천히 오래 생각하면서 깊이 사색하지만, 손은 눈 깜짝할 사이로 재빨리 움직인다. 그야말로 속필이니 마치 속기법처럼 글자는 휘갈겨져 웬만한 사람은 무슨 자 인지 알아보지 못한다. 200자 원고지에 써놓은 글씨를 헤아려 보면 아마 150자도 안 될 것이다. 아무리 악필이지만 매번 그렇지는 않다. 경조 시 봉투에 쓰거나 계약서 등 서류에 쓰는 글은 평소 쓰는 글씨와는 전혀 다르다. 내가 쓴 미려한 글씨를 보고 놀라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나는 아름다운 글씨를 쓰는 게 분명하다.

한글은 자음 14개와 모음 10개를 이용하여 조합함으로써 글자가 만들어진다. 이 중에는 받침이 있는 글자와 받침이 없는 글자가 있다. 예쁜 글자는 크기와 적절한 배열을 통하여 탄생하게 된다.

예쁜 한글을 쓰는 데는 몇 가지 유념해서 써야 할 원칙이 있다. 우선 모든 글자는 자음(ㄱㄴㄷㄹㅁ……)+모음(ㅏㅑㅓㅕㅜ……)의 조합형으로 자음과 모음이 합쳐져야 한 글자를 이루게 된다. 이렇게 합쳐진 글자의 형태는 세모()로 통한다. 세모를 옆으로(◁) 누이던, 세모 두 개(△+▽) 위아래로 합치던(◇) 세모다. 즉 △형은 자음이 위에 있고 모음이 아래 붙는다. 또 왼쪽 자음을 두고 오른쪽에 모음을 붙이면◁형이 되고, 자음+모음+자음의 받침이 있는 글자는 마름모 ◇꼴이 된다. 즉 ◁형은 가, 냐, 더, 려, 미……등이고, △형은 구, 뉴, 드……등이며, ◇형은 국, ˆH, 듣……등이다.

다음은 쓰는 순서인데 우선 좌(左)에서 우 (右)쪽 오른쪽 방향으로, 위에서 아래로 쓰면 된다. 만약에 이를 무시하고 모음(ㅓㅑㅣ,ㅗㅜㅡ……등) 오른쪽이나 아래에 모음을 먼저 쓰고 왼쪽이나 위쪽에 자음을 나중에 쓰면 절대로 예쁜 글자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반드시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쓴다. 예쁜 글자가 되기 위해선 위쪽이나 오른쪽에 있는 자음은 작고, 자음 아래나 밑에 붙는 모음이 자음보다 크게 써야 한다. 또한, 받침이 있는(자음+모음+자음) 자음은 크기가 같아야 좋다. 자칫 위쪽의 자음이 크면 가분수처럼 위태롭게 보이고 아래 자음(받침)이 크면 안정되게 보이는 듯하지만 경직된 분위기다.

요즘 거리에 나가보면 예쁜 글씨들을 이곳저곳에서 간판이나 유리창에 쓴 메뉴판 등에서 볼 수 있다. 캘리그래피다. 캘리그래피는 붓글씨로 쓴 글로 정자체로 쓰는 글이 아니라 개개인의 개성을 살린 글자로 글자체를 자기 마음대로 쓰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쓰던 정자체의 붓글씨와는 다른 캘리그래피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내가 생각하고 있던 예쁜 글씨와는 거리가 먼 기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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