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 주인의 정의
빵집 주인의 정의
  •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 승인 2019.12.2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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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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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불법과 교묘한 편법의 밀림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각종 뉴스를 볼 때마다 정의가 도대체 있는 걸까? 하는 생각과 고무줄처럼 제멋대로인 판결과 형량을 보며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실감한다. 어디 그뿐인가, 해결되지 않는 많은 사회 문제 속엔 존엄이 실종된 지 오래다. 더 말하려니 입만 아플 것 같다. 예전에 아이들과 『샌지와 빵집 주인』 그림책을 읽고 토론한 적이 있었다. 특히 인물의 표정이나 몸짓을 섬세하고 재치있게 표현해서 글 밥이 많이 없어도 사유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주인공 샌지가 빵집 위층에 방을 얻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매일 빵 냄새를 실컷 맡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고 사는 샌지와 그것이 못마땅한 빵집 주인 사이에 벌어지는 신경전이 재미있게 펼쳐진다. 샌지는 급기야 냄새를 한꺼번에 많이 맡을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 코에 걸고 매일 베란다로 나선다. 그것을 목격한 빵집 주인은 배가 아프다. 냄새만 실컷 맡고 빵은 작은 계피빵 하나만을 사가는 샌지가 얄미웠는지 하루는 샌지를 찾아가 화를 낸다. 빵 냄새를 훔쳤으니 빵 냄새 값을 내라는 것이다. 그러자 샌지는 저절로 올라오는 빵 냄새를 맡은 것이지 훔친 것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결국, 빵집 주인은 샌지를 고소하기에 이른다. 재판장 앞에서도 당당한 빵집 주인. 왜 뭐라도 가진 자들은 성찰 없이 도도한 걸까.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겠으나 마음에 찝찝함은 내 몫이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어수선하다. 샌지가 잘못했다는 아이들이 제법 눈에 띈다. 너무 얄미운 캐릭터라는 것이다. 올라오는 냄새를 맡는 것은 뭐 그렇다 치더라도 냄새를 더 많이 맡기 위해서 기계까지 제작한 샌지를 한 대 때려주고 싶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빵을 많이 사주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아이들은 자기가 빵집 주인이라면 샌지가 잠을 잘 때 빵을 굽거나 부엌문을 모두 닫고 빵을 만들겠다고 한다. 하지만 얄미운 죄를 물을 순 없다. 재판관은 어떤 판결을 했을까. 궁금하시다면 그림책을 한 번 읽어 보시길 권한다. 약간의 스포를 하자면 다행히 지혜로운 판결을 한 재판관 덕에 샌지는 무사히 재판정을 나서게 된다.

정의의 바탕은 공정성에서 시작한다. 최대다수의 행복을 추구한 공리주의는 정의를 많은 사람의 쾌락으로 보았고 소수의견은 자연히 무시 되었다. 공리주의의 진정성은 많은 사람의 행복지수에 있었으나 이곳에도 약자가 갈 곳은 없었다. 19세기의 공리주의를 만든 시대엔 최대다수의 행복은 `보통선거'였다. 귀족에게만 있는 참정권을 평민에게도 부여하자는 의미였지만 그 현장에 여성은 없었다. 건강한 사회란 소수의 권리도 제도적으로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핵심은 소수자인 한 사람의 의견이라도 들을 수 있는 관용에서 시작된다. 거대한 자본가를 위해 혹은 정경유착으로 인해 노동자는 배제되며, 통제와 감시적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 아니라 관리자 어른이고, 생산적 일을 한다는 이유로 가정에선 돈을 벌어오는 사람의 입김이 세다면 우리 사회에서 공정과 정의를 찾아보기란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롤스가 말한 `최소 수혜자'의 불행을 담보로 이룬 행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강자만이 행복한 사회를 배제하기 위해 우리는 가끔 싸워야 하며 재판관보다 더 지혜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자칫 나의 작은 이기적인 생각이 최소 수혜자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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