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강연
끝나지 않은 강연
  • 이은일 수필가
  • 승인 2019.12.25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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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은일 수필가

 

도종환 시인의 인문학 강연회에 갔었다. 혁신도시 외곽에 있는 작은 성당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사람이 와 있다. 접시꽃 당신이라는 절절한 시로 한때 모두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시인, 과연 어떤 말로 감동을 줄지 기대가 컸다. 전 장관, 의원, 시인도 아닌 “도종환 선생님을 소개합니다.”라는 신부님의 소개로 강연이 시작되었다. 예전에 근처 덕산중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어 그때 담임선생님을 뵈러 왔다는 여인도 있었다.

시인은 대표적인 몇몇 시를 썼을 때의 얘기를 했다. 비 오는 날 골목 끝에서 라일락꽃을 봤을 때, 진종일 비를 맞아도 향기는 젖지 않고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고 한 꽃잎의 말을 듣고 `라일락꽃'을 썼단다. 꽃밭을 산책하던 중 바람이 불자 일제히 흔들리는 꽃의 몸짓에서 사람은 누구나 흔들리는 시간이 있고 젖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는 소리 없는 외침이 들려왔고 `흔들리며 피는 꽃'은 탄생했다. 담쟁이도 마찬가지였다. 살피고 이해해야 알 수 있는 내면의 소리를 시로 썼다는 얘기다.

온전히 이해한 몸짓과 소리가 그대로 시가 됐을 때 감동이 온다. `스며드는 것'이란 시를 읽고 그랬다. 살 속으로 스며드는 어둠을 어찌할 수 없어서 천천히 받아들이던 엄마 꽃게가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서둘러 꼭 끌어안고 있던 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소름이 돋았다. 시인이 이해한 꽃게는 음식이 아닌 죽어가는 엄마였던 거다. 난 그 후로 더는 간장게장을 먹을 수 없었다.

강연 중반부에는 이생진 시인의 `벌레 먹은 나뭇잎'을 소개했는데 상처 없이 매끈한 나뭇잎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 밉다는 표현이 좋았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 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이 예쁘다는 말도 맘에 들었고, `남을 먹여 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라는 마지막 구절이 백미였다. 떡갈나무를 하나의 인격체로 여기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표현이라 생각했다.

내 손등을 내려다본다. 엄마를 닮은 손, 피부가 얇고 약해서 멍도 잘 들고 상처가 나면 오래가고 무엇보다 검버섯이 얼룩져 할머니 같은 손이다. 젊은 나이엔 이런 유전인자를 물려 준 엄마가 야속했다. 하얗고 깨끗한 피부를 가진 사람을 볼 때마다 검버섯 덮인 손등이 부끄럽고 싫었었다. 하지만 지금 내 손등 위로 겹쳐지는 엄마의 손은 그렇지 않다. 삼 남매 먹여 살린 주름지고 거칠어진 손등 위로 꽃처럼 피어난 검버섯이 아름다운 흔적 같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이제는 모든 걸 시인의 눈으로 봐야겠다고 결심하던 차에 인도의 어느 작가의 말을 인용해 시인이 이런 말을 했다. 작가가 산과 강을 보고 작품을 쓰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산과 강이 작가를 선택해 쓰게 한다는 것이다. 섬진강은 내면을 볼 수 있고 소리 없는 속삭임까지 들어주는 김용택 시인을 선택한 것이고, 엄마 꽃게는 안도현 시인을 선택해 쓰게 한 것이라고.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간단한 질의응답으로 강연은 끝이 났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계속해서 질문이 꼬리를 문다. 오늘 엄마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 걸까. 모든 대상을 인격체로 이해하는 시인의 눈을 가진다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꽃이, 나무가, 산과 강이 나를 선택해 줄까. 선택하고 다가와 불러주는 대상이 사람이라면 더 좋을까….

이제부터의 강연은 오로지 내 고민이고 찾아야 할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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