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 사람들
버스 안 사람들
  •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 승인 2019.12.19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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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현대인은 기계문명이 낳은 기이한 현대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편리함을 쫓아간다. 필요악과 선이 공존하는 문명 앞에 오늘도 우리는 무엇에 쫓기듯 차창 풍경처럼 달린다. 연말이라 잦은 행사로 서울 가는 일이 많아졌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타인과 마주하는 일상과는 달리 버스 안은 일방향이다. 밀폐된 공간에 일정한 인원이 운전사의 페달에 따라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한 공간에서 함께 하지만 전혀 낯선 타인과 타인으로 자리한다. 요즘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버스 안 사람들의 동태를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청주 서울 구간은 보통 1시간 40분 걸린다. 의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아 표를 미리 끊어 놓지 않으면 3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오늘은 끊어 놓은 차표 시간을 기다릴 수가 없어 출발하려는 버스 앞에 기다렸다가 탔다. 다행히도 빈 좌석이 하나 있었다. 3번 좌석이다. 뒤에 앉으면 멀미를 하므로 가능한 앞좌석을 선호하는 내게 행운이다. 멀미 또한 기계문명이 낳은 현대병이다.

충청도 사람들이 주로 이용해서 그런지 대체로 버스 안은 조용하다. 내 옆에는 또릿또릿해 보이는 여학생이 탔다. 귤을 주니까 건강검진 받으러 가는 길이라 금식해야 한다고 한다. 고요로 가득한 버스 안, 진천 지나가는데 갑자기 옆에 있던 여학생이 적막을 깬다. “아저씨 운전 중에 핸드폰을 만지면 어떻게 해요.” 운전사 왈 “급하게 연락할 일이 있어서”라고 하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제가 똑똑히 봤거든요. 지금 여섯 번째잖아요. 생명을 담보로 운전해야 할 분이 핸드폰을 만지면 어떻게 하시냐”며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대항한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지켜만 봤다.

내려오는 길은 시간이 있어 여유 있게 우등버스를 탔다. 혼자 앉아 오는 내 옆에는 노부부가 탔다. 간단히 오가는 대화인데도 큰소리로 반복하는 것을 보니 귀가 잘 들리지 않나 보다. 두 분은 노을이 지고 어둠이 깔리자 금세 잠이 들었나 싶더니 갑자기 “어엉 크”하며 옆에 있는 사람을 놀라게 한다. 나이가 들면 저런 소리도 더러 나오나 보다. 몇몇은 “드르릉 컹” 제 코 고는 소리에 놀라 깼다 잤다를 반복한다. 운전사 뒤, 네 번째 좌석에는 여자 둘이 탈 때부터 속닥거리더니 청주 톨게이트를 지났는데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버스가 지구를 몇 바퀴 돌아도 이야기보따리는 남아 있을 것 같다. 내릴 때까지 이야기 끈을 놓지 않는다. 엄청 다정한 사이인가 보다.

짐을 실어나르는 선박이나 트럭 등 운송수단과 달리 버스는 우리의 발을 대신하는 교통수단이다. 기계로 움직이는 교통수단이 환경문제나 우리의 정서를 한정 짓게도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애용 수단이다. 요즘 버스는 3~4번 좌석 아니면 운전사가 운행 중에 핸드폰을 만지는지를 알 수가 없다. 보통 운전사가 핸드폰을 만져도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많이 망설인다. 차 안에서 여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가 분명히 거슬렸을 텐데 아무도 그 일에 대해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밀폐된 버스 안은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공간이다. 근대에만 하더라도 만남과 이별의 대명사였던 교통수단이 현재는 마음만 먹으면 지구촌 어디나 갈 수 있다. 다양한 사람이 일정한 시간 동안 함께하는 공간인 만큼 타인에게 피해 주는 일이 없도록 했으면 좋겠다. 자연을 바라보며 편히 쉬어갈 수 있는 사유의 공간으로 재생산할 수 있도록 자리매김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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