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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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 승인 2019.12.05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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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잘한 일에 초점을 맞춰 벌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칭찬하라는 `고래 반응'에 대해 나는 춤을 춰야 할지? 냉정해져야 할지 모르겠다. 잘 돼야 60대 중반쯤 보이는 여인이 냉탕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내 엉덩이를 여러 번 두드린다. 묘한 기분이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남자가 그랬으면 100% 성추행이라고 할 텐데, 같은 여자의 입장이라 그 경계가 모호하다. 타인이 내 엉덩이를 쳤다는 것은 기분 나쁘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말이 곁들어져 있어 잠시 망설이다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레 두 사람은 냉탕을 오갔다.

중년 여인이랄까? 할머니랄까? 그 여인 또한 외관상 호칭을 부르기에 모호하긴 마찬가지이다. 중년인 내게 한 말을 생각할 때, 그냥 할머니로 칭하는 게 좋겠다. 할머니 눈에는 내가 젊게 보인 모양이다. 냉탕에 들어가기 위해 쇠로 된 봉을 넘을 때, 탕에 있던 그녀가 “아휴, 어찌 엉덩이가 이리 통통하고 이쁘게 생겼을까?”하며 내 엉덩이를 두드린 것이다. 얼떨결에 당한 나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먹을 만큼 먹었어요.'하고 할 말이 많지만 참았다.

냉온탕 왔다 갔다 하다가 “72번”하고 외치는 세신사의 부름에 세신소에 들어갔다. 김장준비 하다가 손을 살짝 다쳐 오늘 내 몸은 이 여인에게 맡겨야 했다. 때를 밀고 난 후 헹구고 다시 들어오라고 해서 헹구는데 때가 밀린다. 나는 매트에 누어 세신사에게 “찬물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그런지 때가 불지 않았나 봐요”했더니 그녀는 말을 이쁘게 한다며 평상시보다 서비스가 좋았다. 나는 누워서 잔돈 5000원을 받지 말고 팁으로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머리까지 감겨주기에 고마워서 인사를 꾸벅하고 나오는데 잔돈을 주지 않는다. 더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그 가격을 예상하고 세신 했나 보다. 그래도 서비스를 충분히 받았기에 기분이 좋았다.

가끔 나는 누가 칭찬할 때 착각을 한다. 쌀쌀한 늦가을, 친구 셋이랑 선술집에 갔다. 오뎅탕이랑 몇 가지 시켜놓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시키지도 않은 꿈틀거리는 낙지가 우리 테이블로 배달되었다. 주인은 옆 테이블에 있는 남자가 우리에게 갖다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옆을 보니 남자 셋이 술을 마시고 있다. 처음 겪는 일이라 눈치를 보고 있는데, 친구가 주인에게 다시 그 테이블로 갖다주라고 한다. 나는 속으로 `그냥 먹어도 될 텐데' 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있는 남자 한 명이 나를 가리키며 저분이 마음에 들어서 보낸 것이니 얘기 좀 해도 되냐며 우리 곁으로 살그머니 온다. 나는 `이게 뭐지'하고 있는데, 친구는 아주 자연스럽게 너 보자 하니 동생 같은데 까불지 말고 주민등록증 보여달라고 한다. 당황한 남자와는 달리 친구는 오늘 처음 만났으니 다음에 또 만나면 인연이라 생각하고 합석해 주겠다며 돌려보냈다.

고래도 칭찬하면 춤춘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느 때부터 우리는 칭찬에 인색하다며 아부형인지 칭찬형인지 모를 정도로 칭찬이 남발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허(虛)한 구석이 많아서 그 틈새를 빈말의 칭찬이라도 채우고 싶어 하는지 모른다. 가끔 지지리도 못나 보이는 사람을 접할 때가 있다. 부끄러운 명예나 쥐꼬리만 한자리를 차지하고 싶어서 아부 어린 칭찬을 하는 걸 보면 참 씁쓸하다. 밝고 정의로운 사회를 외치면서 왜 우리는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지 참 아이러니하다. 인간의 가치 안에는 반드시 사실적 진술이 감춰져 있어 과학이 윤리적 딜레마를 해결해 준다고 샘 해리스는 말하나, 줄도 빽도 없는 사람은 늘 외길이다. 칭찬의 말로 추운 겨울을 데워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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