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터뷰
마지막 인터뷰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9.12.05 19: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강대헌 에세이스트
강대헌 에세이스트

 

한 번의 호흡으로는 도저히 읽을 수 없어서, 이틀을 곰삭혔어요.

죽음, 탄생, 신비, 선물, 유언, 촛불, 신, 은총, 제너럴리스트(generalist) 등의 단어들이 나오는 말머리 부분에서부터 그만 눈물이 핑 돌아서, 펼쳤던 인터뷰를 덮고 말았던 것입니다.

나머지를 대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주말의 하루를 초조함으로 보냈지요.

다음날 오후에야 몇 번이나 호흡을 가다듬고는 말머리부터 다시 들어갔는데, `생의 마지막 시간을 치열하게 쓰고 있다'는 설명이 붙은 이어령의 사진을 만나고는 또 멈추고야 말았습니다.

언론인이자 평론가로 알고 있던 이어령의 정체가 헷갈린 순간이었거든요. 자신의 눈높이로 두 손을 든 채, 시선으로 허공에 툭 점을 찍는 듯한 그의 모습이 잘 짜여진 교향곡을 연주하는 연륜 깊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사진 한 장만으로도 저는 즐거운 포로가 되고 말았지요.

이어령과 함께한 인터뷰 기사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를 무사히 다 읽는다 해도, 거기에다 무슨 소감을 더할 필요가 있을까 몹시 흔들렸습니다.

다시 정신을 차렸지만, 인터뷰를 읽다가 기어코 찬물로 세수를 하는 경험도 했지요.

무엇보다도, “한 마디 한 마디, 목구멍에서 빛을 길어 올려 토해내는 것 같았다. 녹색 칠판 앞에 앉아 선생이 마지막으로 판 우물물을 거저 받아 마시자니, 감사가 샘처럼 벅차올라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라는 인터뷰어 김지수의 소감이 절창이었습니다.

김지수는 평생 `우물을 파는 사람'이었던 이어령의 마지막 우물에서 두레박에 듬뿍 담긴 지혜의 빛을 보았고, 놀랍게도 인터뷰 당시 이어령의 배경이었던 `녹색 벽'을 `녹색 칠판'으로 바꾸어 표현함으로써 우리 모두를 칠판 앞에 서게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인생 칠판에 무슨 말을 쓰고 있는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아무런 말도 쓰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공(空)'이나 `무(無)'라고 쓰는 사람도 있었고, 무슨 말인가를 썼다가 지워버리는 사람도 있었고, 이어령처럼 쓰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 허망한 소금 기둥처럼 되지 않겠다는 이어령의 결심은 “모든 게 내 힘으로 이룬 내 것이 아니라, 우주에서 받은 생명처럼 선물이었다”는 그의 고백과 맞물려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읽으면서 사람들이 바다를 보러 가고 싶어 하는 이유에 대한 해답을 찾기도 했지요. “내가 사는 바다를 볼 수 있는 상태, 그게 죽음이니까.”(이어령)

이어령은 또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인터뷰를 통해 얼음을 깨는 도끼처럼 인생을 향해 두 개의 질문을 남겼다고 봅니다.

1. “당신은 지금 생명을 풍족히 누리고 있는가?”

2. “당신 마음의 빅뱅을 그 누가 알아주겠는가?”

“어느 날 문득 눈뜨지 않게 해 주소서”라고 날마다 기도하고 있다는 이어령은

`죽지 않고,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돌아갈'것입니다.

이어령에겐 산소와 바다와 별과 꽃,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이 행복한 선물이었더군요.

거대한 메타포(metaphor)의 바다처럼 다가온 인터뷰의 끝 부분에 `꽃봉오리 하나 꽂아놓고'싶은 날이었습니다.



/에세이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