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지세
기호지세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9.12.05 19: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時 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남북조시대 말, 북주(北周, 557~581)의 선제(宣帝)가 죽자 재상 양견(楊堅)이 정사를 담당하게 되었다. 한족(漢族) 출신인 그는 북방 선비족(鮮卑族) 국가인 북주에서 무관으로 큰 공을 세웠다. 북제(北齊)를 복속시키고 그곳의 총관이 되었으며, 자신의 딸을 황제인 선제의 사위로 삼기도 하였다. 그러던 차에 선제가 죽고 뒤를 이어 나이 어린 정제가 즉위하자 양견은 한족 출신 대신과 부인의 세력을 규합하여 모반을 꾀하게 된다. 이때 양견의 부인이 그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맹수를 타고 달리는 형세이므로 도중에 내릴 수는 없습니다. 만일 내린다면 맹수의 밥이 될 터이니 끝까지 달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부디 뜻을 이루시옵소서.”

결국 양견은 부인의 격려에 고무되어 격렬하게 저항하는 황제 측 세력을 물리치고 모반에 성공한다. 이후 양견은 문제(文帝)라 일컫고 수(隋)나라(581~618)를 건국하는데, 8년 후에는 남조 최후의 왕조인 진(陳, 557~589)마저 복속시킴으로써 천하통일을 이룩하게 된다.

범에 올라탄 기세. 즉 이미 시작한 일이라 도중에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을 이야기할 때 종종 인용되는 말이다. 그 뜻으로만 보면 용감한 모습을 나타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호랑이 등에 올라타면 도중에 내리는 순간 호랑이밥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중도에 그만둘 수는 없고 끝을 내야만 할 형세를 가리킬 때 쓰는 표현이다.

초나라 선왕宣王 때의 일이다. 언젠가 선왕이 말했다. “내 듣자하니, 북방 오랑캐들이 우리나라 재상 소해율을 두려워하고 있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그러자 대신 강을이 “북방 오랑캐들이 어찌 한 나라의 재상에 불과한 소해휼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여우가 호랑이에게 잡힌 적이 있었습니다. 여우가 호랑이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늘의 명을 받고 파견되어 온 사신으로 백수의 제왕에 임명되었다. 그런데도 네가 나를 잡아먹는다면 이는 천제의 명을 어기는 것이 될 것이다. 내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내가 앞장설 테니 너는 뒤를 따라오며 모든 짐승들이 나를 두려워하는 것을 확인하라.” 이 말을 들은 호랑이는 여우를 앞장세우고 그 뒤를 따라갔다. 그러자 과연 여우가 눈에 띄기만 하면 모든 짐승들이 달아나는 것이었다. 앞장선 여우 때문이 아니라 뒤에 오는 자신 때문인지를 호랑이 자신도 몰랐던 것이다. 초나라는 그 땅이 사방 오천리에 백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다. 오랑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재상 소해휼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대왕의 나라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어찌 여우를 호랑이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태어난 지 이제 17개월 된 손녀가 하도 토끼를 좋아해서 토끼 한 쌍을 샀다. 손녀는 수시로 토끼에게 사료도 주고 상추, 당근을 주며 좋아했다. 토끼는 무럭무럭 자랐다. 토끼가 커감에 따라 처음 새끼 때의 귀엽고 앙증스런 모습이 사라져 갔고 토끼장 또한 비좁아 방안에서 키우기에는 무리여서 농장으로 옮겼다.

어느덧 어미가 된 토끼들. 널찍한 공간과 토기가 살기에 쾌적한 환경이 조성되자 새끼를 낳았다. 번식력이 강하다는 말은 들었으나 한꺼번에 10마리씩이나 낳는 줄을 몰랐었다. 그 새끼들은 또 어미가 되어 새끼를 낳는다. 이제는 우리 안에 도대체 몇 마리가 되는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고민스럽다. 이대로 키울 수도 없고, 방생하자니 농작물을 다 해치고 말텐데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었다. 어쩔 것인가. 그래도 농사를 망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야말로 기호지세다.

손녀는 울다가도 “토기 보러 가자”하면 울음을 뚝 그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