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와 가는 세월
전성기와 가는 세월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9.12.04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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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어느덧 12월 하고도 5일입니다.

새해인사를 드린 지가 엊그제 같은데 송년인사를 드려야 하는 막달에 들어서니 세월 참 빠르기도 합니다.

이렇다 할 그 무엇도 없이 실없이 나이테만 늘리게 되어 새삼스레 세월의 덧없음과 허무함을 곱씹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가는 세월'이라는 대중가요가 흥얼거려집니다.

서유석이 불러 크게 히트한 노래인데 암울했던 1970년대 말과 1980년대를 풍미했던 기념비적인 노래이지요.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 아가들이 자라나서 어른이 되듯이/ 슬픔과 행복 속에/ 우리도 변했구려/ 하지만 이것만은 변할 수 없어요/ 새들이 저 하늘을 날아서 가듯이/ 달이 가고 해가 가고/ 산천 초목 다 바껴도/ 이 내 몸이 흙이 돼도/ 내 마음은 영원하리'

이처럼 노랫말도 좋고 부르기도 쉬워 많은 사람들이 즐겨 불렀고 노래를 통해 위안을 받기도 했지요.

그래요. 노래가사처럼 막을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게 세월입니다.

흘러가는 시냇물이야 둑을 쌓거나 댐을 만들면 일정기간 흐르지 못하게 할 수 있고 한동안 붙들어둘 수도 있지만 세월이란 놈은 돈과 권력과 미색과 그 어떤 것으로도 하루는커녕 단 1초도 막을 수 없고 붙잡아둘 수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세월은 야속하게 가고 세상인심도 조석으로 변하지만 내 마음만큼은 달이 가고 해가 가고 산천초목이 다 바뀌어도 변치 않는다고, 이 내 몸이 흙이 돼도 영원하리라고 노래하니 감동이지요. 애창할 수밖에요.

그렇듯. 세월(歲月)이란 말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저며 와요.

`무정세월, 허송세월, 유수 같은 세월, 고삐 잃은 세월, 세월아 네월아,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 세월이 약이랍니다'처럼.

아무튼 시간(時間)의 연속이 세월이고 세월의 누적이 역사(歷史)입니다.

모두 사물과 사태의 변화를 인식하기 위한 개념이기도 하구요.

일찍이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시간은 인간정신의 산물이라 했고 또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인간은 시간과 공간에 갇힌 존재라고 설파했지요.

니체는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시간은 끝에 와서는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간다고 했고요. 칸트는 공간과 시간은 인간 감성의 형식적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지요.

어쨌든 인간은 세월의 진행과 역사의 과정 속에 있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이러한 시간의 느낌은 극히 주관적이긴 하나 사회적 관계 속에 갇혀서 살아가기에 시간의 객관적 기준의 틀 속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100세를 코앞에 둔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회고담이 장안에 화재입니다.

그가 `90년을 넘게 살아보니 인생에서 전성기는 예순에서 일흔다섯 정도인 것 같다'고 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죠.

은퇴 후 존재감을 잃고 무기력하게 살던 그 연배의 사람들에게 어깨를 펴고 살 동기부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 은퇴 준비를 하고 있는 50대들도 성장을 게을리하는 `젊은 늙은이'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게 했으니 노학자의 전성기론의 순기능이 참으로 큽니다.

백수인 저도 지금 목하 전성기라고 허세를 부리며 살고 있고 또 그런 기백으로 살고자 노력하니 그럴 만도 합니다.

이렇듯 가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리하여 나이테 늘어남을 피할 수 없지만 늙고 안 늙고는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70세가 되어 스스로 노인이라 여기면 노인이 되어 살 것이고, 전성기라 여기면 여전히 청춘으로 살 테니까요.

그러므로 나이 드는 것과 늙어 가는 것은 별건입니다.

나이가 많아도 청춘인 사람이 있고, 나이가 적어도 노인인 사람이 있으니까요.

`머물러 있는 줄만 알았던 청춘이 점점 더 멀어져만 간다'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가 뇌리를 스칩니다.

멀어지면 안 됩니다.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75세까지는 청춘으로 전성기로.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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