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
입맛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19.12.0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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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금철 수필가
신금철 수필가

 

남편의 눈치를 살핀다. 아직은 참을 만하다는 표정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한 식당을 힘겹게 찾았는데 선뜻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내 표정을 본 남편은 눈치를 챈 듯 다른 식당을 알아보려고 휴대폰을 연다. 서너 군데의 식당을 찾아다니느라 남편이 지칠 때가 된 듯싶어 미안한 생각에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담한 한식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입맛이 까다롭다. 어렸을 땐 멸치도 먹지 않을 만큼 비릿한 음식을 먹지 않았다. 동네잔치가 열려 어머니가 음식을 가져오시면 입에 대지도 않아 어머니의 애를 태웠다. 집에서 생선이나 고기반찬을 할라치면 밥그릇을 들고 따로 먹었다. 주로 채소 반찬만을 고집하다 보니 몸이 약하고 자주 병치레를 하면서도 비위가 약해 생선이나 육류를 멀리 했다. 지금도 생선회나 보신탕 같은 음식은 먹지 않는다. 아마도 까다로운 내 입맛 때문에 어머니가 많이 힘이 드셨으리라.

얼마 전, 제자들로부터 남편과 함께 근사한 횟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약속장소를 알려왔을 때 차마 나는 회를 먹지 않는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제자들을 만나는 반가움이 컸지만, 회에 대한 부담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눈을 질끈 감고 회를 집어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맛있게 먹는 척하려고 표정관리를 했다. 태연한 척 회를 우물거리다 얼른 삼켰다. 남편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걸 보며 나는 눈을 끔뻑거렸다. 두세 번을 그렇게 삼키고는 이야기에 집중하는 척하며 슬그머니 회를 피해 다른 음식에 젓가락을 얹었다. 다행히 제자들이 눈치를 채지 못하였고 남편은 기회 삼아 이제 횟집에도 함께 가자고 했다. 그러나 아직도 회를 먹는 데 자신이 없다.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성격도 까다롭다고들 한다. 가끔 이 말이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서 움츠러들 때가 있다. 입맛이 까다로운 것처럼 내 성격은 까다롭다. 너그럽지 못하여 잘 토라지고, 참을성이 부족해 화를 잘 내며, 냉정하고 배려심도 부족하다. 반성과 후회를 반복하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다.

사람마다 입맛의 차이가 나는 것은 어릴 적에 길들여진 맛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서로 다른 입맛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형제 없이 혼자 자랐으니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여 음식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게 편식의 원인이 된 것 같다.

저마다 입맛에 맞는 음식을 좋아하듯 어떤 일을 할 때에도 자신의 입맛에 맞추려고 애를 쓴다. 직장을 구하는 것도, 사람을 사귀는 것도, 물건을 사는 것도….

세상은 녹록하지 않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있고,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 내 입맛에 맞는 사람과만 소통하고 내 적성에 꼭 맞는 일만 할 수 있으랴. 아마도 나처럼 내키지 않는 음식을 먹을 때도,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올해의 끝자락이다. 올해도 까다로운 입맛보다 더 모가 난 내 성격은 부드럽게 다듬지 못했다. 회 한 점을 억지로 삼키며 제자들을 배려하려 한 마음처럼, 내 입맛에 맞지 않아 마음에서 밀어낸 사람들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들을 위해 더 열심히 사랑의 기도를 해야겠다.

언젠가는 떨어질 우듬지의 마지막 잎새는 욕심을 다 비워내고 있으리라. 까다로운 입맛의 그릇을 비우고 배려와 따뜻한 마음으로 넉넉히 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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