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열쇠
성공의 열쇠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19.11.2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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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삶을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불행한 삶을 원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행복한 삶이란 자신의 원하는 바를 성취함으로써 누릴 수 있다. 따라서 성공적인 삶이 행복한 삶에 다름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함으로써 행복으로 충만한 성공적 삶을 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선설(性善說)을 주창했던 맹자와 달리 성악설(性惡說)을 주창했던 순자는 행복한 삶을 위한 열쇠로 `막신일호(莫神一好)'를 역설했다. `막신일호'는 오직 하나를 좋아하고 하나를 사랑하는 것만큼 신명나고, 신(神)의 품속으로 녹아드는 일은 없다는 의미의 가르침이다.

`막신일호'라는 말과 동일한 맥락의 `逐鹿者(축록자) 不顧?(불고토)'즉, 사슴을 쫓는 자는 토끼에게 한 눈 팔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토끼를 쫓는 자 또한 다르지 않다. 토끼를 쫓는다면 사슴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오직 토끼를 쫓아야 한다. 이처럼 오로지 하나를 좋아하고 하나를 사랑하고, 그 하나를 추구해야만 원하는 바를 이를 수 있음은 당연하다. “바늘 끝이 두 개면 옷을 꿰매기가 어렵듯, 마음을 두 갈래로 사용하면 일을 성사시키기 어렵다”는 티베트 속담도 목전의 한 가지 일에 지극정성을 다할 때 원하는 목표를 이루고 성공에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하는 말이다. 누구도 동시에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는 두 마리의 토끼를 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동쪽과 서쪽으로 달아나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아야 할 필요가 있을 때도, 오직 한 마리의 토끼에 집중해야 한다. 한 마리의 토끼를 잡고 난 뒤, 동쪽이나 서쪽으로 도망가는 나머지 한 마리의 토끼를 쫓아야 한다. 숨을 쉬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제대로 된 편안한 숨을 쉬기 위해선, 숨을 들이쉴 때는 오직 들이쉬고, 내쉴 때는 오직 내쉬어야만 한다. 동시에 들이쉬고 내쉴 수는 없다. 이처럼 매 순간순간 그 시간과 공간에서 해야 할 일에, 지극정성을 다해 집중해야만 원하는 바를 성취함으로써, 신명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결국 성공적인 삶을 위한 지름길인 `막신일호'는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 즉,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하는 가르침임을 알 수 있다.

`막신일호'나 `정신일도하사불성'을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볍게 사용하고 있는 말로 표현한다면 바로 `성실(誠實)한 삶'이다. 성실하다는 것은 정성스럽고 참될 성(誠)과 열매, 본질, 진실을 의미하는 실(實)로 이루어진 단어다. 정성스럽고 참된 생각과 정성스럽고 참된 말과 정성스럽고 참된 행동으로 진실 된 열매를 수확하고, 원하는 바를 성취함으로써 성공적 삶을 누리게 된다는 의미의 말이다. 정성스럽고 참된 생각과 말과 행동이 전제되지 않고는 어떠한 일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성스럽고 참된 생각과 말과 행동이 전제되지 않고도 성취할 수 있는 목표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성스럽고 참된 생각과 말과 행동이 없이도 이뤄지는 일과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실패와 불행한 삶을 잉태하는 불씨가 될 뿐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오직 한 마리의 토끼를 쫓고 있는가? 아니면 동쪽으로 달아나는 토끼와 서쪽으로 달아나는 토끼 두 마리를 모두 잡기 위한 욕심에 사로잡힌 채, 동쪽과 서쪽을 오락가락하며 동분서주고 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이 순간 오직 눈앞의 일에 지극 정성을 다하는 성실한 삶을 살고 있는가? 지금 이 순간 함께하는 사람들과 진심을 다해 소통하면서 뜨겁게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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