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죽어보기
살아서 죽어보기
  •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 승인 2019.11.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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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숲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우리는 일반적으로 세상에 태어난 걸 축복으로 여긴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물론이고 모든 사람이 축하한다. 생일이 되면 선물을 주고받으며 태어난 것을 기린다. 아이를 낳아본 사람은 모두가 느끼겠지만 탄생은 신비로운 일이다. 어떻게 이런 아이가 만들어졌을까가 신기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면 배우자보다 아이가 더 눈에 밟히고 생각이 난다. 내가 그랬듯이 우리 부모도 나를 그런 심정으로 키우셨을 것이다. 태어난다는 건 일반적으로 축복할 일로 여겨진다.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자.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 아버지 뱃속에서 엄마 뱃속으로 달렸다. 정자가 여성의 몸 안에 들어가는 순간 90% 이상이 죽는다. 여성 몸 안의 산성은 정자에는 치명적인 독이다. 여성의 몸은 정자를 적(세균)으로 간주해 공격한다. 자궁을 찾아들어 가는 정자의 수효는 10% 이내이다. 자궁에 들어가서도 정자는 면역 체계의 공격을 받아 대부분이 죽는다. 수많은 난관을 뚫고 가장 먼저 난자에 도달한 정자가 이 세상에 태어난다. 우리 주변의 사람은 이 경쟁을 뚫어낸 사람들이며 이들이 태어나면서 2억 명 정도가 태어나지 못했다.

2억 대 1의 경쟁을 뚫고서 태어난 인생? 소중하다. 나 때문에 못 태어난 인생들도 있기는 하지만 어렵사리 태어난 인생이기에 악착같이 살아야 한다. 그것도 잘살아야 한다. 그러나 사는 과정에도 온갖 장애물과 난관이 놓여 있어서 잘 살기가 쉽지 않다.

검찰 개혁이 화두이다. 왜 거기를 개혁해야 할까? 힘이 막강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고 있어서 폐해가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왜 힘이 막강할까? 만약 사람이 죄를 짓지 않는다면 검사가 힘을 가질 수 있을까? 전혀 갖지 못할 것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이 없다. 살면서 장애가 많고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잘못을 치죄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갖는다. 삶의 장은 넘어야 할 난관과 장애가 도처에 깔려 있다.

합법적으로 산다고 해도 생존경쟁의 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생존경쟁에서 패하면 잘 살기는커녕 살아남기도 어렵다. 유치원 갈 때부터 경쟁을 시작해 중학교에 잘 가야 명문 고등학교에 갈 수 있고, 대학에 가려면 입시 지옥을 거쳐야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취직의 문턱을 넘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그럭저럭 살아남는다고 해도 온갖 유혹이 삶을 노리고 있다. 어쩌다 피운 담배에 중독되어 건강을 해치면서 살고, 아이들은 어쩌다가 한두 번 한 게임에 중독돼 헤어나지를 못한다. 실연을 당해보라. 하늘이 무너질 듯 슬프며 살고 싶지 않다. 연인에게 빠져 사는 것도 일종의 중독이다. 삶의 현장 곳곳이 다 암초이며 장애이다.

결론적으로 삶은 행복하지 않다. 산다는 건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一切皆苦) 일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이들도 원죄(原罪)를 안고 태어난다고 한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기 때문에 태어나서 자연 그대로 살면 벌(고통)을 받는다. 이래저래 삶은 고통이다. 삶의 고통을 어떻게 벗어날까? 태어나지 않으면 고통을 겪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태어난 걸 어떻게 하나? 고통의 원인인 삶의 작용을 멈추면 된다. 사람은 살아 있는 한 움직인다. 수족을 놀리는 것도 그렇고 생각을 하는 것도 움직이는 것이다. 수족도 놀리지 않고 생각을 하지도 않으면 삶의 작용이 멈춰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살아 있는 건 움직이는 것인데 움직임이 고통을 일어나게 하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으면 고통이 일어나지 않는다. 살아 있는 자가 움직이지 않는 걸 죽었다고 말한다. 살아서 움직이지 않기, 곧 죽어보기가 삶의 고통을 끊는 방법이다. 이걸 자살로 오해하는 사람은 가장 큰 고통을 받게 된다. 마음속에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아보라. 거의 불가능하다. 태어난 자가 고통을 극복하는 건 이만큼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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