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끝자락에
가을 끝자락에
  • 이명순 음성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한국어 강사
  • 승인 2019.11.2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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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명순 음성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한국어 강사
이명순 음성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한국어 강사

 

주말이라 친정에 갔다. 어머니 혼자 계시는 친정집은 늘 쓸쓸하다. 아버지가 떠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곳곳에는 아버지의 흔적들이 남아있고 어머니는 그림자처럼 조용히 움직이며 최소한의 생활만 유지하신다.

눈이 불편해지자 어머니의 짜증도 늘어갔다. 연세가 들수록 노환으로 신체 건강이 약해지겠지만, 녹내장으로 시력이 나빠지며 신경이 더 예민해졌다. 혼자 살아내야 하는 날들인데 시력이 거의 상실되면서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커진 듯하다. 자식들에게 부담되기도 싫고 그렇다고 요양원 등 시설에 의지하고 싶지도 않은데 하루하루 꺼져 가는 시력이 어머니를 더 두렵고 예민하게 변화시키는 듯해서 안타깝다.

젊으셨을 때부터 과일나무도 좋아하고 꽃도 좋아하셨는데 봄에는 풀을 뽑는다며 꽃이 필 화초들을 수북이 뽑아 놓기도 하셨고, 여름이면 푸른 잎이 시원해 보이는 바나나 나무도 베어내라고 성화셨다. 친정집이 길가에 있어 오며 가며 집 안이 훤히 들여다보일 수도 있는데 바나나 나뭇잎이 크고 이국적이라 보기도 좋고 창문도 가려주니 그냥 두라는 내 말에 인상을 쓰며 마음을 표현했다. 날씨가 추워지면 축 늘어진 바나나를 베어내고 보온을 위해 덮어줘야 하는데 이번 겨울에는 보온을 위해 덮지 말고 그냥 두라고 하신다. 모든 게 다 귀찮기만 한 것이다.

가을이 깊어가며 어머니의 걱정은 또 생겼다. 집 뒤에 큰 감나무가 있는데 감이 많이 달려도 어머니의 시름은 늘어간다. 때맞춰 집에 오는 동생들이 알아서 감을 딸 건데 어머니는 미리부터 걱정이다. 몸이 불편해 스스로 하실 수 없으니 모든 일들이 어머니에겐 골칫거리일 뿐이다.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감이었고 즐겨 드시던 과일인데 이제는 주렁주렁 열린 감들의 개수만큼 어머니의 근심거리만 많아진다.

읍내 사는 여동생은 직장 생활로 아무리 바빠도 이틀에 한 번씩은 집에 들른다. 밑반찬도 챙기고 청소도 하며 어머니를 살뜰히 챙기는 여동생에게 늘 고맙다. 남동생들도 시간 될 때마다 들려 집 안팎을 손보려 노력하지만 혼자 사는 어머니의 외로움은 채워지지 않고 한 해 한 해 커져만 간다.

멀지도 않은 곳에 사는 나는 친정집에 자주 발걸음을 하지 못한다. 늘 어머니께 죄송스럽고 여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모처럼 여동생과 어머니를 모시고 외식을 한 후 가까운 이포 당남리 섬에 갔다. 썩 내켜 하지 않는 어머니를 모시고 바람도 쐴 겸 갔다. 하늘하늘한 코스모스가 반긴다. 하늘을 향해 피어 있는 천일홍도 초롱초롱하다. 요즘 인기있는 핑크뮬리 속에서 사람들이 저마다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어머니를 모시고 우리도 사진을 찍었다. 몇 장 찍더니 싫다는 어머니를 여기저기 옮겨 다니게 하며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젊을 때는 키도 크셨던 어머니가 이제는 작은 체구에 코스모스보다 더 여려지셔서 가슴이 아리다. 앞으로 얼마나 더 어머니를 모시고 이렇듯 외출을 할 수 있을까. 이제는 멀리 외출도 할 수 없는 어머니의 건강이 딱 지금처럼이라도 유지되시길 간절히 빌고 또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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