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단상
초겨울 단상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19.11.2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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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 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낙엽은 떨어지는 것만으로 사람을 울린다.

언젠가는 사라질 숙명을 지고 있기에 낙엽은 단지 예쁜 가을 풍광만이 될 수는 없다.

보기에 따라서는 봄꽃보다 화려한 초겨울 낙엽이 인간들에게 암시하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다. 봄에 돋아난 잎새가 가을 지나 초겨울이면 낙엽으로 되는 것은 사람들에게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조선(朝鮮)의 시인 이언적(李彦迪)에게 초겨울 자연 경물이 주는 느낌은 무엇이었을까?

초겨울(初冬)

紅葉紛紛已滿庭(홍엽분분이만정) 붉은 단풍잎 떨어져 뜰에 가득하고
階前殘菊尙含馨(계전잔국상함형) 계단 앞에는 국화 여전히 향기롭네
山中百物渾衰謝(산중백물혼쇠사) 산속 온갖 것 다 시드는데
獨愛寒松歲暮靑(독애한송세모청) 겨울 소나무 해밑에도 푸른 것이 좋구나

가을을 지나 초겨울이면, 나뭇잎들은 대부분 시들어 떨어진다.

붉게 물든 단풍잎이 마당에 가득 떨어져 있는 모습은 늦가을과 초겨울의 인상적 광경이다.

아름답지만 쓸쓸한 느낌을 주는 것은 늙어가는 것에 대한 자각 때문이다. 서리에도 꿋꿋하다 하여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 불리는 계단 앞 국화꽃도 거의 다 지고 잎새 몇 개가 남았을 뿐이다.

향기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 또한 쓸쓸한 느낌을 주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마당 가득 떨어져 있는 단풍잎의 아름다움과 계단 앞에 몇 잎 남아 있는 국화꽃의 향기는 인생의 덧없음을 돋보이게 하는 초겨울 풍광이다.

눈을 집 밖으로 돌려봐도 마찬가지이다. 산속에 무성하게 자랐던 초목들이 다 시들어 버려 앙상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이에 시인의 쓸쓸함은 배가되고 만다. 이런 가운데 시인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 하나 눈에 띄었으니, 푸른 빛을 잃지 않고 있는 소나무가 그것이다.

소나무는 비록 겨울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님을 모를 사람은 없다. 다만 앙상함만 가득한 세상에 푸르름을 지키고 있는 소나무는 그 존재만으로도 초겨울에 유독 쓸쓸함을 강하게 느끼는 사람들을 위안하기에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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