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김장
  • 류충옥 수필가·청주성화초 행정실장
  • 승인 2019.11.24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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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류충옥 수필가·청주성화초 행정실장
류충옥 수필가·청주성화초 행정실장

 

올해는 추위가 더디게 오는 것 같다. 동지(冬至)도 지나고 소설(小雪)도 지났건만, 아직도 단풍잎은 나무에 붙어서 겨울나기에 대해 일러주고 있는 듯 떨어질 줄을 모른다.

겨울이 오면 나무는 수기(水氣)를 뿌리로 거두고 알몸으로 겨울날 준비를 하여야 하는데, 지구 온난화로 날씨를 종잡을 수 없으니 나무들도 헷갈리나 보다. 동물도 겨울나기 준비를 한다. 곤충들은 겨울나기를 위해 당류를 글리코겐으로 저장하여 체내에 비축하고, 사람과 같은 포유류들은 피부에 지방층을 쌓아 놓는다고 한다. 그래서 겨울에는 더 쉽게 살이 찌고 빠지지 않는 듯하다.

다람쥐가 가을에 부지런히 도토리를 물어다 저장하듯, 사람도 월동준비를 한다. 나물이나 생선류 등 오래 보관할 수 없는 것들은 짠 소금에 절이든가 수분이 없게 바싹 말려서 보관한다. 그중 우리나라의 대표 겨울 먹거리 준비는 김장이다.

김치냉장고가 대중화되기 전, 날씨가 추워지면 김장을 하여 땅속에 항아리를 묻고 그 속에 김치를 보관하였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이라 집집이 배추 100포기 이상은 기본으로 했다. 추운 날 밭에서 배추를 뽑아다가 반을 갈라서 소금을 뿌리고 밤새도록 뒤적여서 잘 절인 후 서너 번 씻어서 물기를 뺀다. 그리고 양념을 만들기 위해 무를 뽑아다가 씻어서 썰고, 마늘도 일일이 까서 찧고, 파를 다듬어 썰고, 갓을 다듬어서 씻어서 썰고, 여름내 농사지은 고추를 빻은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려 김칫소를 만든다. 집마다 약간씩 다른 비법의 양념을 넣었는데, 우리 집은 홍시를 갈아 넣어서 단맛을 내었다. 생새우를 갈아서 넣기도 하고 액젓을 넣기도 하고 찹쌀 풀을 쑤어서 넣기도 한다. 김장하는 날은 돼지고기를 삶은 수육에 갓 버무린 김치를 막걸리와 함께 먹고, 생굴을 김치와 버무려 먹으면 그 맛이 또한 일품이었다.

눈 내리는 날 뒷마당에 묻은 김칫독 뚜껑을 열고 땅속의 김치를 한 포기 꺼내다 먹으면 그 시원한 맛은 무엇과도 견줄 수가 없다. 살얼음 살짝 언 동치미는 어떠한가? 지금도 군침이 돈다. 아무리 김치냉장고가 잘 만들어졌다고 해도 땅속 김장독의 김치 맛을 못 본 사람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으리라.

지구촌이 하나가 되어 외국 음식을 쉽게 접할 수도 있고 먹거리가 많다 보니, 요즘엔 김치를 안 먹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어릴 때부터 매운 음식도 먹이며 키워야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데, 과잉보호로 매운 음식은 접할 기회를 주지 않으니 커서도 먹지 않는다. 우리나라 김치에는 유산균이 많아서 건강 음식으로 손꼽히는데도 말이다. 그러다 보니 김치도 예전만큼 먹지 않게 되고 김장도 적게 하게 된다. 올해는 배춧값이 비싸서 김장하지 않고 사 먹는 가정이 많다고 한다. 김장하여도 요즘엔 절임 배추를 사다가 양념만 버무리거나, 아예 절임 배추에 양념까지 버무려 오기도 한다.

올해는 시누이와 언니네에서 김장김치를 얻어왔다. 김치냉장고가 가득 차니 반찬 걱정이 없어지는 듯 든든하다. 묵은 김치는 만두를 만들어 먹고, 동치미 김치는 고구마를 쪄서 함께 먹으리라. 평소 잡곡밥을 먹다가 모처럼 흰 쌀밥에 파김치를 얹어 먹으니 식구들의 밥 더 달라는 소리가 정겹다. “엄마~ 밥 한 그릇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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