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적과 난적
숙적과 난적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9.11.21 20: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時 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지리적이나 역사적으로 한국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는 한국과 일본 양국은 유사 이래 수많은 접촉과 교류를 가져왔다. 특히 20세기 전까지 양국관계는 적지 않은 우여곡절을 겪어오는 가운데 일본의 조선식민통치라는 씻을 수 없는 전력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대의 고금을 통틀어 우리가 단언할 수 있는 분명한 사실 중의 하나는 적어도 일본으로서는 “한반도의 안정이 자국의 안보에 직결된다”는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은 일본이 한반도를 아시아 대륙의 진출경로 내지 전진기지 또는 교두보로 인식하는 것임과 동시에 아시아 대륙으로부터의 외부세력 침투를 막기 위한 완충지대로서 인식해 왔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늘 티격 거리는 이웃이다.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로 소송 등 경제제재로까지 발전하여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에 사용되는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를 실행했다. 이로 인해 일본 제품의 불매운동이 10대 20대 젊은이들로 시작하여 전 국민으로 확산되었다. 끝내는 일본과 맺은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의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가운데 지난주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프리미어12가 있어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결과는 일본이 우승. 한국은 준우승에 그쳤다. 한국은 충분히 선전했으나 도쿄돔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일본을 만나 3-5로 패했다. 4년 전 초대 우승의 영광을 되풀이하는 데는 실패했다. 또 하루 전 일본과 슈퍼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도 8-10으로 져 이틀 연속 한일전 패전을 안는 아쉬움을 맛봤다.

한국, 일본, 대만은 오랜 시간 야구로 질긴 인연을 맺어왔다. 특히 객관적인 전력 면에서 가운데에 위치한 한국은 한 수 위 일본과 한 수 아래 대만 사이에서 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야 했다. 라이벌이라는 관계는 무척 신비하다. 한국은 늘 일본과 만날 때마다 실력 이상의 경기를 펼쳤고, 대만 역시 한국만 만나면 기량 이상의 경기력을 보여줬다.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두 배로 긴장했다. 일본과 대만 양국이 모두 “한국은 무조건 꺾는다”는 출사표를 던지기 때문이다.

국제무대에서 한국과 일본의 숙적 관계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순간마다 장군과 멍군을 주고받으며 팽팽한 라이벌전을 펼쳤다. 그러나 대만은 한국이 드러내 놓고 라이벌이라 표현하지 않았을 뿐, 늘 빼놓지 않고 신경 써야 하는 난적으로 여겨졌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19일 베트남 하노이의 미딩국립경기장에서 니시노 아키라 사령탑이 지휘하는 태국과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G조 5차전을 치렀다. 베트남과 태국의 신경전. 이유가 있다. 두 팀은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라이벌 국가다. 인도차이나 반도에 위치한 두 국가는 최근 정치, 경제, 스포츠 등에서 경쟁 중이다. 이번 경기는 단순한 축구의 의미를 넘는다.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그래서 더 많은 관심이 쏠린 한 판이었는데 0대0 무승부로 비겼다.

한국인 우리가 유독 관심 가졌던 건 베트남과 태국 간의 경기보다도 베트남의 한국인 박항서 감독과 태국의 일본인 니시노 아키라 감독이었다. 차도살인(借刀殺人).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다. 남의 힘을 빌려 적을 치면 자신의 힘을 쓰지 않고 일을 쉽게 도모할 수 있다. 내 칼에 피를 묻히지 않고 남의 칼에 피를 묻히는 고도의 전략이다.

모든 스포츠를 보는 즐거움은 어차피 대리만족이기는 하다. 프리미어12에서 숙적 일본을 쓰러뜨리지 못했지만 베트남이 태국을 이김으로써 아쉬움을 달래고픈 한국인의 열망이었으리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