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9.11.2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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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어느덧 11월 하순입니다.

겨울을 재촉하는 눈비가 내리고 찬바람이 세차게 붑니다.

나뭇잎들이 떠날 때가 되었다는 듯이 포도위에 떨어지고 휘날립니다.

포도에 위에 껌 딱지처럼 붙어 있는 비에 젖은 낙엽들과 미화요원들의 실랑이가 안쓰럽습니다.

아무튼 가을바람에 나뭇잎이 떨어지는 건 자연의 섭리입니다.

몸집을 가볍게 해야 엄혹한 겨울을 날 수 있는 나무들에는 나뭇잎을 떨어트려주는 매서운 바람이 어쩜 고마울 줄 모릅니다.

그렇듯 추풍낙엽의 계절입니다.

그래요. 추풍에 낙엽만 떨어지는 게 아니라 별도 떨어지고, 눈물도 떨어지고, 사랑도 명예도 낙엽처럼 떨어지는 계절입니다.

속절없이 늙어가는 청춘의 낙화도 빠질 수 없고요.

그뿐이 아닙니다. 한 때 잘나가던 사람들이 덫에 걸려 추풍낙엽처럼 스러지기도 하고, 용이 될 뻔했던 인물이 이무기보다 못한 추한 몰골로 추락하기도 합니다.

안타깝지만 추락하는 데에는 날개가 없음입니다.

하여 이래저래 마음이 짠하고 우울한 계절입니다.

각설하고 해마다 이맘때면 생각나는 사람과 읊조려지는 노래가 있습니다.

1995년 3월 작고한 작곡가 길옥윤과 2013년 10월 고별공연을 끝으로 무대에서 사라진 가수 패티김이 바로 그들입니다.

20세기를 빛낸 대한민국 최고의 작곡자이자 연주자였던 길옥윤과 관객을 압도하며 열광케 했던 불세출의 가수 패티김이 1966년 부부의 연을 맺고 음악활동을 함께 한 건 우리 가요사에 크나큰 축복이었습니다.

이들 커플이 1973년 이혼하지 않고 삶과 음악활동을 계속 함께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역설적으로 결별과 이혼의 아픔이 있었기에 ‘이별’, ‘못 잊어’,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같은 주옥같은 명곡들을 이 땅에 남겼는지도 모릅니다.

노래를 좋아하는 필자는 그들이 남긴 히트곡을 즐겨 듣고 즐겨 부릅니다.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길목에 들어서는 이맘쯤이면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에 필이 꽂혀 지냅니다. 왜일까요.

그건 아마도 길옥윤의 패티김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노랫말과 멜로디에 절절히 녹아있어서 일겁니다.

아니 만추가 되면 기억에 남아있는 꿈들이 별이 되어 어두운 밤하늘에 스러지기 때문일 겁니다.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겨울은 아직 멀리 있는데/ 사랑할수록 깊어가는 슬픔에/ 눈물은 향기로운 꿈이었나/ 당신의 눈물이 생각날 때/ 기억에 남아있는 꿈들이/ 눈을 감으면 수많은 별이 되어/ 어두운 밤하늘에 흘러가리/ 아 그대 곁에 잠들고 싶어라/ 날개를 접은 철새처럼/ 눈물로 쓰여 진 그 편지는/ 눈물로 다시 지우렵니다/ 내 가슴에 봄은 멀리 있지만/ 내 사랑 꽃이 되고 싶어라/ 아 그대 곁에 잠들고 싶어라/ 날개를 접은 철새처럼/ 눈물로 쓰여 진 그 편지는/ 눈물로 다시 지우렵니다/ 내 가슴에 봄은 멀리 있지만/ 내 사랑 꽃이 되고 싶어라’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전문입니다. 노랫말이 한 편의 잘 쓰여 진 시처럼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멜로디와 선율이 가을을 빼닮아서입니다.

그렇습니다.

날개를 접은 철새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돌아갈 의지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눈물로 쓰여 진 편지를 눈물로 다시 지워 본 이는 압니다.

사랑할수록 깊어지는 슬픔을. 비록 봄은 멀리 있지만 아직도 마음만은 그대 꽃이 되고 싶음을.

가을은 결실과 수확을 의미하지만 사랑과 이별을 의미하기도 하는 묘한 계절입니다.

그래서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이 ‘겨울을 남기고 떠난 사랑’보다 좋은가 봅니다. 열흘 후면 12월이 오고 또 한 해가 그렇게 저물어 갑니다.

산속의 토끼와 다람쥐들이 겨울채비를 끝냈는지 부질없는 걱정을 하며.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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