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느낌
가을 느낌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19.11.11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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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가을은 곡식이 영그는 계절이다.
동시에 나뭇잎이 단풍 들고 얼마 안 가 말라 떨어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봄부터 시작된 삶의 행렬들이 어디론가 사라져 가는 모습들은 가을의 익숙한 광경이다.
단풍은 아름답지만 슬픈 느낌을 준다. 사라짐을 위한 화장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한해살이 풀은 아니지만, 인간은 제한된 시간을 사는 존재이므로 사라짐의 계절인 가을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리라.
당(唐)의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느낀 가을도 이런 맥락에 맞닿아 있다.

秋思(추사) - 백거이(白居易)

夕照紅於燒(석조홍어소) 석양이 장작불보다 붉고
晴空碧勝藍(청공벽승남) 갠 하늘은 쪽빛보다 푸르네
獸形雲不一(수형운부일) 동물 모양 구름은 하나가 아니고
弓勢月初三(궁세월초삼) 활의 기세로 보건대 달은 초사흘 달이네
雁思來天北(안사내천배) 기러기 편에 온 그리움은 하늘 북쪽에서 오고
砧愁滿水南(침수만수남) 다듬이질하는 수심은 강 남쪽에 가득하네
蕭條秋氣味(소조추기미) 쓸쓸하여라, 가을 기운의 맛
未老已深諳(미노이심암) 늙지도 않았는데 이미 깊이 기억되네

석양이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보다 붉고, 비 지나간 하늘은 남초보다 더 파랗다. 새하얀 구름은 각양의 짐승 형상으로 파란 하늘을 유유히 유영하는데, 팽팽한 활의 줄을 위로 걸친 초사흘 달도 나와 구경을 한다.

이 아름답고 생동감 있는 정경은 가을이 주는 선물이다.

그러나 이 선물을 받아든 사람들의 심사는 마냥 좋지만은 않다.

가을이면 북쪽에서 날아오는 기러기가, 가족의 안부를 묻는 타향살이 나그네의 편지를 입에 물었다거나, 북쪽 변방에서 혹시 돌아올지도 모르는, 그러나 기대난망인 남편의 겨울옷을 준비하는 아낙네의 다듬이질 소리에 수심이 가득하다고 한 것은 가을을 대하는 사람들의 심사를 대변한다.

가족과 떨어져 타향을 떠도는 사람은 부쩍 외로움을 느끼고, 고향 집에서 객지에 나간 가족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더욱 간절해지는 것이 가을인 것이다.

장작불보다 붉은 석양, 남초보다 파란 하늘은 아름답게 포장된 가을 선물이지만, 이를 받은 사람들의 심사는 쓸쓸해지니 인생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름다운 가을에 느껴지는 쓸쓸함의 맛은 뇌리에 깊게 각인되어 잊혀지지 않는 것은 아직 늙지 않은 젊은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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