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엄성수 2
향엄성수 2
  •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 승인 2019.10.3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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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스스로 늙은 노인네라
마음에 두는 일 아무것도 없네.
누더기 속에 이는 아이를 불러 잡고
주머니 속에 시는 손님을 청해 읊어보네.


반갑습니다. 무문관(無門關) 공안으로 보는 자유로운 선의 세계로 여러분과 함께하는 괴산 청천면 지경리 청운사 여여선원 무각입니다. 제가 상주하고 있는 산골 초암에는 소담한 구절초가 한창이네요. 이 시간에 살펴볼 공안은 진퇴양난형 공안인 무문관 제5칙 향엄상수 2(香嚴上樹)입니다.

깨달음을 얻게 된 향엄 선사는 너무나 기뻐서 목욕재계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향을 피우고는 위산 선사가 있는 쪽을 향해 절을 올리며 이렇게 하였습니다. “위산 선사의 도가 존귀함은 아니나 부모미생이전의 일구를 가르쳐달라고 청하였을 때 가르쳐 주시지 않았던 것을 오히려 귀하게 여깁니다. 그때 제게 바로 가르쳐주셨더라면 오늘의 이 통쾌한 깨달음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위산 선사의 자비하신 은혜는 부모보다 더 깊습니다.”

이렇게 향엄 선사가 말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때에 만일 위산 선사께서 향엄 선사에게 곧바로 가르쳐주었더라면 향엄 선사는 아마도 머리로만 알아듣고 발심을 일으키지 않아서 끝내 대오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후에 향엄 선사는 대나무에 돌 자갈이 부딪치는 소리에 깨달았는데요. 돌 자갈이 대나무에 부딪히는 그 순간에 바로 자신의 마음을 보게 되었던 것이지요. 소리를 듣고 알아차린 주인공 스스로의 마음을 보게 되었던 것인데요. 부모미생이전에도 늘 그대로인 지금 이 순간에 살아있는 바로 그것이 향엄 선사의 마음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어떻게 하면 향엄 선사처럼 부모미생이전의 스스로를 바로 보고 견성할 수 있을까요?

위산 선사는 알음알이 지식으로만 가득한 향엄 선사에게 일구의 가르침을 거절함으로써 향엄 선사가 지식을 끊어 견성할 수 있게 했듯이 스스로 모든 분별을 내려놓고 가슴에 법을 가득 품었지만 벙어리가 되고 귀머거리가 되면 오히려 대오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지요. 알음알이 분별이 끊어지고 생각이 끊어져서 사구백비가 끊어진 법의 자리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라 해도 저것이라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으며 어떤 모양을 내도 어떤 물결을 일으켜도 어떤 말을 내도 어떤 개념을 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게 된다는 말입니다. 불이법에서는 물결과 물이 둘이 아닌 것처럼 말이지요. 그렇다면 마음은 어떻게 만나게 될까요? 향엄 선사는 이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사유해 보고 다음 시간에는 무문관 제5칙 향엄상수 3(香嚴上樹)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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