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생각?
  •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 승인 2019.10.3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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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숲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철학 공부를 시작한 지 40년이 되어 간다. 철학이 무언지에 대한 의문은 항시 뇌리에 남아 있었고 그에 대해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보니 철학은 자기를 들여다보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찾는 과정이라고나 할까? 나는 내 머릿속에 일어나는 모든 생각을 하나도 빼지 않고 면밀히 들여다보는 작업(행위)을 철학이라고 본다. 자기 머리에 일어나는 모든 생각을 면밀히 들여다본다는 건 자신의 삶 전체를 지켜보는 것과 같다.

나의 인생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말썽이란 말썽은 다 피우고 살았다. 나는 요즘 집사람에게 잡혀 산다. 집사람이 요구한 건 아니지만 스스로 집사람을 떠받들면서 산다. 요리도 하고 밥도 한다. 집사람이 먹을거리가 떨어졌다고 이야기하면 장도 봐서 먹거리를 마련한다. 왜 그렇게 사느냐고? 첫째는 죄를 많이 지어서 미안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먹거리를 스스로 마련할 수 있으면 집사람이 나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마누라에게 의존하기보다 집사람이 나에게 의존하게 되면 쫓겨날 일이 없다.

쫓겨나는 걸 걱정할 정도로 나는 말썽을 피우고 살았다. 그 말썽을 집사람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알고 있다. 무슨 말썽이냐고? 그건 말할 수 없다. 아무튼 나는 지금까지 쫓겨나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것만 밝혀둔다. 말썽을 피우면서 나는 말썽을 피우면 안 된다는 걸 모르고 있었을까?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말썽을 피웠다. 왜 그럴까? 나는 안 되는지를 알면서도 왜 저질렀을까?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내 생각이 그렇게 만들었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데 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무언가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내 생각이고 그걸 하고 싶다는 것도 내 생각이다. 하고 싶다는 생각에 말려서 나는 말썽을 피웠다.

삶을 돌이켜본다는 건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돼 먹었는지를 본다는 것과 같다. 요즘도 마음속으로는 말썽을 피우지만 행동으로 저지르지 않는다. 사실 모든 사람은 머리로는 죄를 짓고 산다. 마음속으로 죽인 사람을 세어보라. 나는 숱하게 많다. 멋진 이성을 보고 혹한 적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일어나는 일을 모두 행위로 옮기지 않을 뿐이다.

생각에서 행위까지의 거리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은 과격하지만 삶은 평온하다. 이런 사람은 생각에서 행위까지의 거리가 멀다. 어떤 사람은 순한 것 같은데 이야기를 나누거나 같이 놀아보면 성격이 급하다. 이런 사람은 생각에서 행위까지의 거리가 짧다. 생각하면 곧 저지르는 사람은 실천력은 있지만 좌충우돌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마음속에 일어난 생각을 행위로 옮기는 속도가 빠르면 나처럼 말썽을 많이 피운다.

나이가 드니 머리에 드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보다 일어나는 생각을 들여다보는 경우가 많다. 자연히 느긋해질 수밖에 없다. 화가 났을 때 일어나는 화를 들여다보면 화가 사라진다는 것이 신기하다. 화가 나기는 하지만 그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현저히 줄어든다.

생각을 들여다보면 욕심이 생긴다. `지금 나에게 떠오른 생각은 어디서 왔을까?',`지금 내가 화를 내고 있는데, 화가 뭐지?'라는 의문이 생긴다. 이런 의문을 갖게 되면 생각의 이면(裏面) 내지는 뿌리를 들여다보게 된다. 끝까지 가면 어떻게 될까? 생각은 밖으로 나가게 되어 있다. 생각이 진행되는 방향을 거슬러 올라가 이 모든(한) 생각의 뿌리를 찾는 것이 요즘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인데, 생각에서 행동까지의 거리가 짧아서 계속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이 생긴다. 정말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데 사람들과 부대끼느라 못하는 사람을 자기에게 진 사람이라고 한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진 사람은 말이 없어야 한다. (敗者 有口無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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