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도(蜀道)는 실제 있는 길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순탄치 않은 인생의 길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험난한 길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독특한 취향일 뿐, 일반적으로는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더구나 그 길을 갔다가 돌아와야 하는 경우라면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촉으로 가는 길(蜀道難) 6
朝避猛虎(조피맹호) 아침에는 사나운 호랑이 피하고
夕避長蛇(석피장사) 저녁에는 긴 뱀을 피하네.
磨牙吮血(마아연혈) 이를 갈고 피를 빨아
殺人如麻(살인여마) 사람 죽인 것이 삼대같이 많다네.
錦城雖雲樂(금성수운낙) 금성이 비록 즐거우나
不如早還家(부여조환가) 일찍 집에 돌아옴만 못하도다.
蜀道之難難于上靑天(촉도지난난우상청천) 촉도난이여 푸른 하늘로 오르는 것보다 어렵도다.
側身西望常咨嗟(측신서망상자차) 몸 돌려 서쪽 바라보며 늘 탄식하네.
촉도는 길이 높고 험해서 위험한 것만은 아니다. 사나운 호랑이나 긴 뱀 같은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맹수들이 수시로 출몰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을 이빨로 물어뜯고, 피를 빨아 죽인 것이 부지기수로 많다. 마치 빽빽하게 들어선 삼나무들을 베어내 듯, 사람을 죽여 눕힌다고 한 시인의 표현은 과장이지만, 결코 허투루 들을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이 시는 결코 일반적인 송별시가 아니다. 낯선 곳으로 먼 길을 떠나는 친구를 위로하고, 석별의 정을 드러내는 그런 유형이 아닌 것이다.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려 하는 친구를 강하게 만류하는 내용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여기서 친구가 바로 시인 자신일 수 있다는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볼 때, 이 시는 사람들이 선망하는 휘황찬란한 도시인 금성(錦城)에 가기 위해 사지나 다름없는 길을 가지는 않겠다는 다짐으로 읽혀야 한다.
가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기 위해, 그 길이 위험천만하다는 것을 시인 스스로 각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토록 선망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가는 데까지는 성공한다고 해도, 그 도시에 곧 환멸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있는 곳으로 돌아오려 하겠지만, 이 또한 치명적으로 위험하다. 가기도 어렵고, 가봐야 곧 환멸을 느낄 테고, 그렇다고 돌아오기도 사실상 불가능한 그런 곳이라면 결코 가서는 안 되는 것 아니겠는가?
인생의 길에도 결코 가서는 안 되는 길이 있게 마련이다. 부와 명예의 달콤한 유혹에 이끌려 무작정 길을 나섰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허다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