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혼자에게
혼자가 혼자에게
  •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 승인 2019.10.28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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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나는 행복을 바라지 않는다. 행복이라는 말은, 참사람을 그 말의 노예로 만든다. 대신 내 몸 안에서 핵분열 하는 행복의 세포만 믿기로 한다. 그러니 굳이 행복을 위해 애써 하게 되는 일련의 피로한 행위들도 다 그만두자고 주문을 건다.”
이병률 작가의 새로운 산문집이 나왔다. ‘혼자가 혼자에게’(이병률 글·달·2019)라는 쓸쓸하지만 단호한 제목이다.
행복을 쫓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작가의 말에 내 일상을 뒤돌아본다. 나는 미래의 행복을 담보로 잡고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하루를 보내고 또 다른 아침을 맞이할 뿐이다. 가끔은 완벽히 혼자인 그런 시간을 꿈꾸며 말이다.
담담히 삶과 여행을 논하는 이병률 작가의 문장이 좋아 그의 전작을 모두 읽었다. 작가의 책 속에 담긴 사진이 너무 좋아 그 여행지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인 채로 보낼 수 없는 나에게 이번 책은 마치 주문 같았다. 조금 천천히 내 마음을 돌아보라고 말이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는 ‘혼자의 품격’을 획득한 사람인지 곰곰이 되뇌어 본다.
나는 조바심과 걱정이 많은 아이로 사춘기를 보냈다. 또한 누군가의 비난받는 것과 나로 인한 사람들과의 오해와 싸움을 매우 두려워하였다. 그야말로 누구에게나 착한 아이이고자 했으며, 혼자 있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은 아이였다. 쉬는 시간 화장실은 꼭 친구와 함께 가야 했으며, 혼자 휘적휘적 걸어가느니 할 일 있는 사람처럼 뛰어다녔다. 그땐 누군가가 꼭 있어야만 했다. 나랑 제일 친한 친구, 옆자리에 같이 앉을 친구가 없으면 불안했다. 이 책은 그랬던 나의 사춘기가 어김없이 생각나게 만든다. 혼자인 것이 두려웠던 시절의 두근대던 심장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지금은 영화도 혼자 잘 보고, 어색함 없이 버스에 혼자 앉을 수도 있으며, 혼자 떠나는 여행의 참맛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추억이라 꺼내는 모든 일들은 누군가와의 관계에 관한 일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는 일과 별개로 좋은 추억이라 꺼내 보는 기억은 좋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은 그런 일들이다.
이 책 속의 사진들 중 유난이 의자 사진이 많다. 공원 속 벤치일 수도 있고 덩그러니 있는 의자 일 수도 있다. 책을 읽다가 보이는 의자가 쓸쓸해 보이지만 풍경 속에 들어가 앉아 있고도 싶다. 그러다가 어김없이 의자 끝에 나를 보면 말갛게 웃고 있을 또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더 사랑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함일 수 있겠다.
작가의 혼자가 쓸쓸해 보이지 않는다. 단단함이 실어 있다. 우린 누구나 혼자이며, 혼자인 사람을 만나 삶을 다지고 드라마를 쓰고 역사를 만드는 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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