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에 대하여
인연에 대하여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9.10.2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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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지난주는 참 행복했습니다. 물 맑고 공기 좋은 청정지역에서 사람향기 그윽한 세 부부가 그림 같은 집에서 꿈같은 3박4일을 함께 해서입니다.

그게 뭐 대수라고 이리 호들갑을 떠느냐고요? 그래요.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3박4일쯤은 거뜬히 다녀올 수 있는 세태이고 시대이니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이러는 데에는 그럴만한 연유가 있어서예요, 아내 회갑기념으로 동유럽 패키지여행을 갔다가 만난 생면부지의 세 부부가 기간 중 형님 동생이 되어 지냈는데 귀국한 지 2주일 만에 기쁜 해후를 했고 형제애를 더욱 돈독히 했으니까요.

사실 이순이 넘은 나이에 호형호제한다는 게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한 번 갔다 오면 그만인 그것도 비행장에서 짐 찾고 헤어지면 그만인 패키지관광객 사이에선 보기 드문 현상이거든요.

귀국한 지 2주 만에 다시 재회를 한다는 것이 그것도 자신의 집으로 초청해 3박4일이나 함께 지낸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요?

더군다나 불신의 시대에 생면부지의 사람을 선뜻 집안으로 들인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이렇듯 세 부부가 친하게 된 건 일행 31명 중 최고령 층(남양주에 사는 71세 부부와 영월에 사는 68세 부부 그리고 청주에 사는 필자 부부) 인데다가 모두 장남이고 맏며느리라는 공통점과 부부가 억척스럽게 가난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한 지난 삶의 편린들이 엇비슷해서입니다.

짧은 기간의 만남인데 이처럼 호연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축복이지요.

초청한 영월 작은 형님 부부는 울산에 살다가 1년 전 고향 영월에 귀촌했다는데 평창강을 끼고 있는 주천면 산골마을 양지바른 곳에 천여 평의 대지에 35평짜리 본집과 11평짜리 세컨하우스를 짓고 살고 있었습니다.

고추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와 땅콩 감자 채소 등을 심는 텃밭과 닭을 키우는 우리도 있어 보기 좋았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금방 낳은 따끈한 달걀을 들기름에 풀어서 날마다 먹는 호사도 누렸고요.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정선장에 가서 사람구경도 하고 쇼핑도 했지요.

집으로 돌아올 때는 차에 남양주 형수님이 요리해서 가져온 쇠고기 장조림과 간장게장도 싣고, 영월 형수님이 바리바리 싸주신 고들빼기 땅콩 감자 고추 노각 옥수수 등을 실으니 벼락부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특히 작은 형수님은 같은 안동출신이라고 살갑게 대해주어 고맙기 그지없었습니다.

하여 다음 달에는 누추하지만 제 집에 두 부부를 모시고 청남대도 가고 속리산에도 가고 초정에서 목욕도 할 요량입니다.

각설하고 모든 인연은 소중합니다. 아니 소중해야 합니다.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으니 필연이든 우연이든 모든 인연은 소중하고 맺은 인연이 호연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의 행불이 인연 맺기와 인연 쌓기에 달려있으니까요.

수필가 피천득 선생은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고 했지요.

좋은 지적입니다. 옷깃만 스쳐도 좋은 인연이 되는 사람은 정녕 행복한 사람입니다.

필자는 후학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며 삽니다.

인연을 악연으로 만드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고 불행한 사람이며, 인연을 호연으로 만드는 사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째려본다고 기분 나쁘다며 싸움질 해 한 사람은 비명횡사하고 또 한 사람은 평생 감옥살이를 하는 악연처럼 악연의 끝은 비극이고 비참입니다.

그러므로 호연을 맺지 못할지언정 악연만은 절대로 짓지 말라고. 호연이 되려면 인연을 연인처럼 하라고 말입니다. 인연. 그 인연에 울고 웃는 인생사입니다. 오늘도 맺은 인연에 감사하며 사는 까닭입니다.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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