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페레 아우데!
사페레 아우데!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19.10.2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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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2막으로 구성된 한 편의 극, 1막의 배경은 어느 시골길 앙상한 가지만 있는 한 그루의 나무 아래, 저녁 시간이다. 부랑자인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고도라는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의 기다림은 어제오늘 시작된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정확하게 고도가 누구인지 언제 어디로 오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이제는 기다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때우기 위해 서로 동문서답하기, 욕하기, 장난치고 춤추기 등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고도가 오면 모든 것이 바뀔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있다. 그 기다림이 절망으로 깊어질 때쯤 고도의 소식을 알려 주는 소년이 등장한다.

“고도 선생님이 오늘 밤에는 오지 않고, 내일은 꼭 오겠다는 말을 제게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2막도 1막과 다르지 않다. 2막 역시 날짜만 그 다음 날이지 장소와 시간은 같다. 그 둘은 어제와 똑같이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정작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자리를 떠나지도 못한다. 1막과 2막은 똑같이 끝난다. 에스트라공이 말한다.“자, 갈까?” 블라디미르가 대답한다. “그래, 가세.”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2년전 긴 걷기여행을 계획하고 부다페스트를 향해 떠나는 비행기 안, 문득 그 책이 떠올랐다.

이번 학기 한 대학원 수업에 청강 자리를 자청하였다. 프리드리히 쉴러가 아우구스엔부르크 공과 주고받은 편지글을 읽는 수업이었다. 매주 참석하여 공부에 매진하리라 다짐했지만, 결국 지난주 결석을 하고 말았다. 결석이 안타까웠는지,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이 그날 읽었던 편지글 중 한 구절을 보내주었다.

“오늘 기억에 남는 한 문장은 8번 편지에 있는 `사페레 아우데'입니다. `앎에 과감하라'또는 `과감하게 알라'는 뜻이지만 `스스로 생각하기를 두려워 말라!'라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앎을 탐구하는 거침없이 정진하라는 의미로만 생각했는데 오늘 강의를 들으면서 조금 더 넓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사페레 아우데'는 `사람의 성향 속에 진정한 진리로 나아가고 싶어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그 무언가는 나태한 본성과 비겁한 심장이다.'라는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서 정력과 용기가 필요한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인간이 진정한 진리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무언가'를 알아차리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삶, 그것은 우리 속에 진정한 진리로 나아가고 싶어하지 않는 무언가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나태한 본성과 비겁한 심장 때문에 우리는 바람직한 변화도, 진리로의 정진도 해내기가 어렵다.

하지만, 글을 보내준 선생님은 그것을 깨기 위해서 정력과 용기가 아닌 우리를 방해하는 `무언가'를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옳은 지적이다. 변화하는 삶의 시작, 정력과 용기를 내는 시작은 `무언가'를 알아차리는 것에서부터 이루어진다. `고도를 기다리며'속의 블라드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무엇인가를 간절히 기다리면서도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정력과 용기 부재가 아니라 나태와 비겁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 이유다.

잠시라도 벗어나 보자. 2천킬로미터의 장거리 걷기는 아니더라도, 멋진 가을 속 산책에서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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