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문화와 공교육의 산실 충북의 향교
유교 문화와 공교육의 산실 충북의 향교
  •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 승인 2019.10.21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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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향교는 유교문화 위에서 설립되고 운영된 교육기관으로, 국가가 유교문화이념을 수용하기 위해 중앙의 성균관과 연계시키면서 지방에 세운 것이다.
향교는 고려시대에도 존재했으나, 불교를 탄압하고 유교를 숭상하면서 정치이념으로 내세운 조선시대에 더 적극적으로 설립되었다. 조선 왕조는 유교 이념을 통하여 지방 사회의 질서를 유교 문화 속에 포함시키는 가운데 관리 선발을 위해 운영하던 과거 제도를 유교 교육과 연계시키려 하였다. 이러한 사회 문화적 기능의 기초 기구로서의 역할을 담당한 것이 향교이다.
따라서 국가는 지방 행정 제도의 정비와 함께 고을 수령들에게 향교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보호·육성을 촉구했으며, 이를 위한 재정적 지원도 적극적으로 했다. 이런 국가 정책에 힘입어 향교는 지방 수령의 책임하에 그 운영이 활성화되었다.
향교의 학생에게는 군역이 면제되었고, 학업 성적이 우수한 경우에는 소과인 생원·진사 시험에 직접 응시하게 하거나 세금을 면제받는 등의 특전이 부여되었다. 각 고을 향교의 학생 정원은 제한되어 있었다. 조선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에 의하면 각 고을 별 향교 학생의 정원은 고을의 규모에 따라 차등을 두었다. 부·대도호부·목에는 90명, 도호부에는 70명, 군에는 50명, 현에는 30명으로 전국적인 총 학생 수는 1만 5330명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향교는 유교 교육을 위한 장소를 넘어 모든 지역의 문화적, 정신적 중심체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기능이 정치기능이다. 향교는 출발에서부터 정치적 성향을 띠고 있었다. 즉 향교에서 유학을 교육받은 지방민은 생원·진사 시험을 거쳐 다시 성균관에 입학하고 문과시험을 통과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중앙의 정치권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방 지식인들은 향교의 운영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향교를 통해서 합법적으로 인정되는 면역의 특권을 누리거나 지방정치의 중심세력이 될 수 있었다. 향교·향청·서원 등이 지방 유림들의 집회소이자 여론을 만들어 중앙으로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고장 충북에도 주요 지역에 향교가 존재한다. 청주시 상당구 대성동 소재 청주향교와 충주시 교현동의 충주향교, 제천시 교동의 제천향교,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의 청풍향교, 청원군 문의면 미천리에 있는 문의향교, 보은군 보은읍 교사리의 보은향교, 보은군 회북면 당수리의 회인향교,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의 옥천향교, 옥천군 청산면 교평리의 청산향교, 영동군 영동읍 부용리의 영동향교, 영동군 황간면 남성리의 황간향교,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의 진천향교, 괴산군 괴산읍 서부리의 괴산향교, 괴산군 청안읍 읍내리의 청안향교, 괴산군 연풍면 행촌리 연풍향교,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의 음성향교, 단양군 단성면 상방리의 단양향교, 단양군 영춘면 상리에 있는 영춘향교까지 모두 18개의 향교가 각 고을의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유교적인 교육적인 기능은 거의 사라지고 재향과 어르신들 교제의 장으로 변모되는 상황이다. 최근에 학생들의 인성 교육과 지역의 문화적 공동체의 중심지로서 온고지신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시켜가는 모습이 세대 간의 공감과 소통의 장으로 발전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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