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길 5
인생의 길 5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19.10.1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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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 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시인이 촉(蜀)으로 가는 길의 험난함을 장황하다 싶을 정도로 길게 늘어놓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촉(蜀)으로 떠나는 친구를 위로하고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려는 취지로 보인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이별시로만 보기는 어렵다.

촉으로 가는 길(蜀道難)5

其險也如此(기험야여차) 그 험함이 이와 같도다
嗟爾遠道之人(차이원도지인) 아, 당신 길 떠나는 사람이여
胡爲乎來哉(호위호내재) 어떻게 오시려오?
劍閣崢嶸而崔嵬(검각쟁영이최외) 검각산은 가파르고도 높아라
一夫當關(일부당관) 한 남자가 관을 지키면
萬夫莫開(만부막개) 만 명의 남자들도 열지 못하리
所守或匪親(소수혹비친) 지키는 사람이 아는 사람이 아니면
化爲狼與豺(화위낭여시) 변하여 이리나 승냥이가 되네

촉도가 높고 험난하다는 것을 특유의 과장법과 유머감각을 통해 묘사해 낸 시인은 그 길로 떠나갈 친구를 걱정한다.

지금의 성도(成都)인 금성(錦城)에 가려면 반드시 지나가야만 되는 그 길은 참으로 높고 험하다고 여러 비유를 동원해 친구에게 말하는데, 이는 이 시가 단순히 이별을 슬퍼하는 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의심은 시의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짙어진다.

촉도가 위험한 것은 자연환경 탓만은 아니라는 걸 힘 주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검각(劍閣)이라는 곳은 통로가 얼마나 좁던지 한 사람이 지키고 있더라도 만 사람이 지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 말은 결코 과장이나 우스갯소리가 아닐 것이다. 그 길목을 지키는 이가 요행히도 아는 사람 같으면 잘 봐주겠지만, 그럴 확률은 거의 없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거기를 지키는 사람은 사나운 이리나 승냥이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길만 지나기 어려운 게 아니라 짐승 같은 사람이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해칠 것이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지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죽음의 길을 지나서 금성(錦城)에 가야만 하는가? 설혹 가는 것은 간다 치더라도 그 길을 되짚어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까?

시인은 이별을 슬퍼하고 험한 길에 나서는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이 시를 쓴 게 아니다. 가지 말라고 만류하기 위해 쓴 것이리라.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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