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문을 열며
하루의 문을 열며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19.10.14 2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하얀 분꽃이 눈부시게 하늘을 향하고 있다. 대문 앞 화단에 자리를 잡아주었더니 제법 꽃을 피워낸다. 작은 나팔을 일제히 부는 형상이다. 일 때문에 집을 비우고 늦은 저녁이면 들어오는데 그때마다 나를 반기듯 환하게 고개를 들고 있었다. 매일 드나들며 눈 맞춤을 해오는 터 특별한 점 하나를 발견했다. 한낮에는 꽃잎을 꼭 다물고 있다가 어둠이 시작되는 저녁부터 햇살이 다가오는 아침까지 유독 많은 꽃을 피운다는 사실이다. 꽃은 언제나 기분을 좋게 만들지 않던가. 거기에다가 은은하게 풍겨내는 분 향기까지 마음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때를 따라 꽃을 피우는 일이었다. 낮과 밤사이에서 각자가 빚어내는 삶들이 그렇다. 밝으면 밝은 만큼 어두우면 어두운 만큼 시기적절하게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그러던 중 흔치않은 광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을 여는 소리가 묵직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다가와서다. 그 시간에 거리청소를 하는 사람, 우유배달과 신문배달을 하는 사람들이 마치 하얀 분꽃처럼 맑고 신선하게 보였다. 그들도 내 눈에는 하얀 분꽃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자취마저 분꽃의 향기를 흩뿌리고 지나간다.

어둠이 저만큼 물러나고 있다. 거리를 밝히는 미화원이 벌써 청소를 시작했다. 언제나 흩어놓은 거리의 얼굴을 매만지듯 허리를 구부리며 부지런히 다닌다. 지나간 곳에는 새로운 공기가 내려와 사방을 산뜻하게 만들고 있다. 융단을 깔아 놓은 듯 평온하다. 그 풍경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의지가 새롭게 솟아난다. 나 자신과의 타협도 수월해지는 순간이다.

신선한 아침과 함께 배달되는 우유를 마신다. 아무리 직업이라지만 누군가의 건강을 위해 궂은 날도 마다치 않고 골목을 누빈다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을 터이다. 대문 앞의 우유를 꺼낼 때마다 손끝에 닿는 촉감이 상큼해서 좋다. 좁다란 길, 새벽이슬의 옷을 입고 내 집에 찾아온 손님처럼 반갑기까지 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도움을 받는 처지였다.

눈을 뜨면 밖은 언제나 유유한 길목이었다. 곳곳에서 자기만의 길을 가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방금 내 옆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간다. 앞뒤로 가득 실린 신문들이 갈 곳을 향해 달음질하고 있다. 사계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그 시간이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손색이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안과 밖에 소식을 전달하는 파수꾼이었다. 오토바이소음조차 부지런한 숨소리로 들려오니 신기할 뿐이다. 멀어져 가는 뒷모습에서 오늘의 안녕을 빌어준다.

아침은 여전히 우리들과 밀접하게 반복되고 있다. 그 안에서 삶의 향기들이 곳곳으로 퍼져 나가 새로운 하루를 선보여 간다. 어둠이 내려앉았던 자리에도 꽃들은 변함없이 피어나고 있었다. 형형색색, 이런저런 모양으로 사람의 영혼처럼 의식을 덧입고 있는 듯하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계층의 사람들도 내가 잠든 사이에 자기와 사회를 위하여 꽃과 다름없는 삶을 펴가고 있었다. 그 밖에 무생명의 존재까지도 하늘 아래서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으며 필요치 않은 것들이 없었다. 이처럼 내가 누리는 세상과 시간의 바탕에 거듭 감사를 한다. 축복이라 여기며 살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