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을질
갑질 을질
  •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 승인 2019.09.2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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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도심 한복판 커다란 집에 식구가 많은 대가족이 살았다. 대가족 집은 주차장이 있는 울타리 주변에 나무도 심고 영산홍도 심어서 나무도 보고 꽃도 보며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몇 년 후 그 집 옆으로 다른 집들이 이사를 왔다. 새로 이사를 온 옆집은 대가족 집의 주차장 쪽으로 아담한 정원을 만들고 집을 지었다. 아담한 정원은 훤히 보이는 철제 울타리를 쳤기에 대가족 집에서도 보이고 다른 옆집에서도 잘 보였다. 그런데 새로 이사 온 아담한 정원의 주인은 자기 집 정원에서 편한 차림으로 다니고 싶은데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이 꺼려졌다. 그래서 옆에 있는 대가족 집에 키 작은 영산홍을 캐내고 자기 집 정원이 가려지는 큰 나무를 심으라고 했다. 자기 집 정원은 훼손하기 싫고 가리고는 싶으니 남의 정원에 큰 나무를 심고 싶었나 보다. 정 어려우면 자기가 나무를 사다가 심게 해달라고 했으나, 내 땅에 옆집 나무를 키우는 것은 죽거나 문제라도 생기면 곤란할 것 같아서 대가족 집은 거절을 했다.
그 후 대가족 집은 식구들이 점점 늘어나 두 배나 많아졌고, 그에 따른 물건도 많아졌기에 창고를 지어 물건 등을 넣기로 하였다. 창고를 지을 공간이 마땅치 않아 주차장 쪽 화단의 일부를 없애고 창고를 짓기로 하였다. 물론 옆집에 피해를 주지 않는 법적 간격을 유지하고서 말이다. 그런데 지난번에 영산홍을 없애고 큰 나무를 심어달라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불만을 품고 있던 옆집이 이번에는 화단을 없애지 말라고 대가족 집에 요구하였다. 이만저만하여 창고를 지어야 한다고 설명하자 그럼 울타리 옆에 한 줄만이라도 살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대가족 집은 아담한 정원집의 미관을 생각하여 옆집 정원을 가려줄 만한 가장자리 줄에 있는 큰 벚나무 두 그루를 살려두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담한 정원 집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더 요구하였다. 그래서 대가족 집은 이웃과의 평화를 위해 창고의 면적을 약간 줄이고서라도 세 그루까지 나무를 살려두고 짓겠다고 했으나, 이번에는 지난번에 들어주지 않은 영산홍 대신 큰 나무를 심어달라고 또 요구한다. 옛 속담에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면 보따리 내놓으라’라고 한다더니 속담은 괜히 생긴 것이 아니었나 보다.
도심 한복판 주택에 살면서 훤히 보이는 울타리를 정원에 설치하고는 사생활이 노출된다고 옆집에다 나무를 보완하라고 한다. 개인의 사생활은 각자가 알아서 하는 것이 민주사회 아닌가? 돈이 없는 가난한 집도 아니면서 자기 집 울타리를 스스로 보완하여 사생활을 지키면 될 것을, 남의 땅에 있는 남의 재산을 가지고 놔라 마라 하는 것은 무슨 경우인가?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상대방에게 오만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하며 제멋대로 구는 짓을 ‘갑질’이라고 한다는데, 관공서와 공무원은 내가 낸 세금으로 먹고사니 막무가내로 내 말을 들어야 한다고 한다면 이것은 갑질일까? 을질일까?
내 몸을 가리려면 내가 옷을 입어야지 남의 눈을 가리거나 남의 옷으로 가리려고 남을 제 몸 부리듯 하려 하는 것은 성숙한 사고는 아닌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린아이가 된다고 한다. 그 말은 남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내 입장으로만 요구하기 때문이다. 노인의 기준은 물리적 나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고가 유연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바로 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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