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일의 딜레마
삶과 일의 딜레마
  •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 승인 2019.09.25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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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숲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12연기(緣起)는 불가(佛家)의 핵심 사상으로 사람이 태어나서 늙어 죽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12연기의 가장 최종적인 단계는 카르마(karma)이다. 카르마는 모든 것이 고통인 세계(一切皆苦)에서 그 고통의 최종 원인이다. 중국인들이 karma(karman)를 업(행위, 業識, 業)으로 번역을 하였다. 업(業)이란 무언가를 행하거나 짓는 것을 의미한다. 무언가 하는 걸(行爲) 인간 고통의 최종 근거로 해석했기에 카르마를 업으로 번역했을 것이다.
행위 자체가 인간 고통의 원인이라고 보는 시각이 의아하면서도 흥미롭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는 해석이다. 무언가를 한다는 건 항상 나 밖의 사람이나 대상하고 연관을 맺는다는 걸 의미한다. 세상을 살려면 다른 사람이나 대상과 연관을 맺는 건 불가피하다. 곧 살려면 다른 사람이나 대상과 연관을 가져야 하고 다른 사람이나 대상과 연관을 갖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하거나 지어야만 한다.
무언가를 하거나 지으면 반드시 영향관계가 성립한다. 내가 무언가를 하면 그에 대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지은 것에 대한 반대급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내가 사람을 미워하면 상대도 나를 미워한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좋은 감정을 가져 사랑하면 상대도 나에게 잘해준다. 더 나아가 좋은 사람과 사랑을 하면 그 결과 아이가 태어나 나의 삶을 좌지우지 한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인데 그 결과인 자식은 나의 삶을 지배한다.
이런 방식으로 무언가를 하거나 지으면 반드시 되먹임이 돌아오는 게(因果應報) 인생이다. 업을 지으면 그에 대해서 반드시 갚아야 하고 이를 갚기 위해서는 또다시 행위를 해야 하기에 또 업을 짓는다. 업 짓기 → 업 갚기 = 업 짓기 → 업 갚기 = ? ? ? 라는 사이클이 무한히 반복된다. 이런 사슬에 들어가지 않으려면? 업을 짓지 않으면 된다. 곧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 태어난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태어난 것 자체가 이미 업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를 할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다. 살아가는 한, 일을 안 할 수는 없고 일을 한다는 건 또 다른 문제를 만드는 일이다. 이것이 삶의 딜레마이다. 삶의 딜레마 앞에서는 그저 살 뿐이다. 이걸 벗어나려면 엄청나게 힘든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야 한다.
행위가 순수하면 되는 거 아닌가? 선한 업에 따라서 일을 하면 되지 뭔 고민이 필요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일을 하다 보면 욕을 먹는다. 자리를 차지하고 일을 하다 보면 특히 욕을 많이 먹는다. 그래도 취지는 순수하기에 열심히 일을 하는데도 이상하게 오해를 해서 이상한 풍문을 생산하고, 이를 듣고 호사가들이 비난을 사실화하여 증폭하는 경우(一犬吠形, 百犬吠聲)가 많다. 또 이런 풍문 생산구조를 이용하는 인간들이 종종 있다. 오해하고 있는 사람하고 대화를 하면 아무리 해명을 해도 그건 해명으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변명으로 들린다. 곧 사실을 호도하기 위한 핑계나 포장으로 들린다. 상대의 취지를 선의로 해석할 생각이 없는 사람하고는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말꼬리만 잡힐 뿐이다. 그리고 말꼬리를 잡아서 또 욕을 해댄다. 이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일만 열심히 해도 딜레마가 생겨난다. 주변에 자문을 구하면 못 들은 척하란다. 맞다 그저 일만 하면 될 뿐이지 욕을 먹건 칭찬을 듣건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산책을 하면서 마을 어귀에 들어서는데 개가 갑자기 짖어댄다. 난감하다. 해코지할 생각도 없는데 겁을 먹었는지 미친 듯이 짖어댄다. 노려봐도 소용이 없다. 시끄럽기도 하고 짜증도 좀 난다. 그렇지만 갈 길을 가는 거 이외에 다른 대책이 없다. 개가 짖는다고 사람이 짖어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저 갈 길을 갈 뿐 개하고 맞장을 뜰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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