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부메랑이 아니다
사랑은 부메랑이 아니다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19.09.24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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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자히르, 그것을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은 접하거나 만나가 된다. 마음의 눈을 멀게 하고 다시는 찾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다 결국에는 자신을 그것에 구속시켜 버리고 만다. 내게도 자히르는 존재했었다. 하지만 다시 그것을 만나기도 쉽지 않겠지만, 그때가 정말 행복했었는지는 단언할 수 없다.

얼마 전 여행에서 읽었던 파울료 코엘료의 소설 `오 자히르'는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아무래도 동양적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사랑법이라고나 할까. 몇 년 전 읽었던 그의 작품 `불륜'또한 충격 그 자체였다. 한 번 어긋난 사랑을 되돌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은 상하 관계가 아니며, 동등한 위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사랑을 할 때는 누가 누군가에게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요즘 우리 사회도 양성평등의 입장에서 남녀의 관계를 재해석하려는 노력이 눈에 띈다. 하지만 여전히 남녀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남자인 경우가 많다.

코엘류는 책 첫머리 헌사에서 `자히르'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히르는 아랍어로 눈에 보이며 실제로 존재하고,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우리의 사고를 점령해 결국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사물 혹은 사람을 말한다.'그것은 누군가를 향한 사랑일 수도 있을 것이며 무엇에 대한 열정이기도 하고, 세상을 살아가게 만드는 에너지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내게 도움을 주거나 힘이 되어 주는 사람, 나를 나답게 만들 수 있는 일, 자신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는 환경이 그것이다.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인 `그'는 에스테르라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종군기자였으며 몸도 마음도 구속되길 싫어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에게 에스테르는 `자히르'였다. 그녀가 물론 첫 여자는 아니었다.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거쳐 만난 에스테르는 실재하기도 한, 자히르. 그에게 에스테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존재였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고, 경찰의 조사까지 받는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그는 미하일이라는 낯선 청년에게서 에스테르가 카자흐스탄 스텝의 어느 마을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떠난다. 나무가 자랄 수 없는 초원의 그곳에서 에스테르는 `아코모다도르'를 이겨내고 있었다. 아코모다도르, 살다 보면 어느 순간 한계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그는 에스테르를 통해 자신의 한계점을 알게 되고 휴식을 얻는다. `어떤 사람'의 아이를 임신한 에스테르와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며 소설은 끝난다.

사랑의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코엘류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오해와 불신으로 얼룩진 사랑일지라도 결국에는 모든 것을 포용할 줄 아는 너그러운 통 큰 사랑 법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현실에서는 멀고도 먼 이야기일 수도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배신의 응징을 처절하게 하자는 식의 논리를 펴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많기 때문이다.

데이트 폭력, 요즘 우리 사회가 안는 사회문제의 하나이다. 실제로 어떤 젊은이들은 이별 후의 보복이 두려워, 또는 상대방에게 있을 폭력성이 두려워 만남을 꺼린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린다. 그것은 상대방을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코모다도르, 사랑이건 일이건 누구나 한계점에 다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겨내는 자만이 진정한 사랑을 얻을 수 있고 자신의 일에 성취감을 이룰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사랑이란 다시 돌아오는 부메랑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되는 아코모다도르이며, 또 다른 자히르라는 생각이 든다. 내게도 또다시 자히르가 찾아오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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