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무서웠다
소녀는 무서웠다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19.09.10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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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링링, 홍콩에서 소녀를 귀엽게 부르는 이름이라는데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이번 태풍은 우리나라 곳곳에 큰 피해를 주고 떠났다.

건물의 간판이 날아지고, 하우스의 철근이 휘어지고, 수확을 앞둔 과일들이 강풍 앞에 맥없이 떨어졌다. 사람 또한 생명을 잃거나 다치기도 했다.

이번 태풍의 이름을 지은이는 아마도 작고 귀여운 소녀의 모습처럼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태풍은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두렵고 위협으로 다가오는 태풍도 사람과 지구 상의 동식물이 살아가려면 없어서는 안 된다.

뜨거워진 지구의 온도를 식혀주고, 바다를 뒤집어 바다생물들에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준다.

육지도 마찬가지이다. 태풍은 오염된 산과 들을 청소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태풍이 지나고 난 다음 날, 남편과 이웃도시로 모임에 가는 길이었다. 우리 앞에 펼쳐진 하늘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파란 하늘에 흰 뭉게구름이 그려 놓은 그림이 어찌나 예쁘던지 미소가 절로 나왔다. 어제는 그리도 세상이 시끄럽더니 오늘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이리도 예쁘기만 하니 자연의 속내가 두렵기만 하다. 그저 자연이 하는 일에 고개가 숙여질 수밖에 도리가 없다.

요즘, 우리나라는 조국 법무부장관의 임명을 두고 말들이 많다. 갈등들 속에는 당쟁과 가족에 대한 불신이 제일 큰 이유이다.

혼돈의 정국이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 당의 이익을 위해 나라의 앞날을 흔들어서도 안 되며, 아직 밝혀지지도 않은 가족에 대한 의혹으로 무조건 지금의 정권을 불신해서는 안 된다. 지금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주변국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호시탐탐 넘보는 이웃들이 너무도 많다. 그중에서도 일본은 지금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로서로 불신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일은 우리 스스로 파국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살아있는 권력에 굽히지 않는다는 검찰이 있지 않은가. 나라의 일에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것도 나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혹만으로 한 사람을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태풍을 지나는 중이다. 태풍이 클수록 고통스럽고 상흔도 많이 남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태풍은 새롭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지 않는가. 그러니 지금의 상황도 어쩌면 언젠가는 해결이 되리라 믿는다. 다만, 갈등의 시간이 너무 길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태풍 속을 지나는 것은 까칠한 고양이를 안는 것과 같다. 우리 집에는 가칠한 고양이 `먹구'가 있다. 작년 비 오는 가을 어느 날이었다. 어미 고양이가 병이 들어 다 죽어가는 새끼 고양이를 우리 집 계단참에 버리고 갔다. 작은딸 아이가 안고 들어와 키우기 시작했는데 까만 털색을 보고는 이름을 `먹구'라고 지어주었다. 귀도 들리지 않고, 한쪽 눈도 없는 장애 묘이다. 그런데 얼마나 까칠한지 한 번 안으려면 손에 상처가 나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그래도 그 부드러운 털이 너무 좋아 안게 된다. 다행인 것은 안아보는 횟수가 늘수록 할퀴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귀여운 소녀 `링링', 까칠한 고양이 `먹구', 세상에는 쉽고, 행복한 일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지나고 나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보다 내일, 우리는 좀 더 자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제를 사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숨이 턱 밑까지 차도록 힘들지라도 부디 모두 힘을 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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