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19.08.29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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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일단 목적지는 바다로, 길은 국도로 택했다. 목적지는 정했지만, 천천히 가다가 누군가 손짓하는 곳에서 머물다 와도 괜찮은, 그녀와 나의 마음이 일치했다. 자연은 즐기는 자의 것이다. 여행의 출발은 늘 들뜬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을 달렸다. 추전역 이정표가 손짓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추전역으로 망설임 없이 올라갔다. 1970년대 석탄산업에 큰 힘이 되었던 역이다. 치열했던 삶의 애환이 있던 흔적은 오간 데 없다. 작고 예쁜 간이역으로 남아 우리에게 또 다른 기쁨을 주고 있다. 이 자리에 남아 있기까지 거친 비바람과 눈보라를 견디며 왔으리라.

그녀는 정년을 앞두고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그녀도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무던히 애를 썼다. 시어른 모시고 아이들 키우며 사회 생활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늦은 나이에 공부하며 자기관리에도 철저했다. 그녀나 나나 어른들 모시고 살다 보니 참는 일에는 이골이 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번 일은 힘들어한다. 나와는 30년 지기다. 내가 경기도에서 청주로 이사와 처음으로 마음을 터놓은 사람이다.

추전역, 철암역, 석곡역을 거처 하늘 세평 꽃밭 세평 승부역까지 왔다. 승부역에는 우리뿐이다. 우리는 철로 위를 걸었다. 그녀에게 “요즈음 힘들지?”하며 손을 꼭 잡다. 펑펑 운다. 몇 개월째 불편한 근무를 하고 있다. 참았던 울음이 터진 것이다. 한참을 울고 나더니 “언니 걱정 마요. 잘할 수 있어요. 내가 이 직장에서 보낸 세월이 얼만데요. 나 ㅇㅇㅇ이예요.”한다. 작은 체구로 견뎌 내는 모습이 안쓰럽다. 지금 그녀는 팽팽하게 당겨진 활 같다.

살다 보면 위기는 늘 주변에 도사리고 있다. 오는 위기는 어쩔 수 없다. 어떻게 슬기롭게 잘 넘기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여행에서의 실수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긴다고 했다. 여행은 추억이 되지만 인생은 후회가 남는다.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차이는 위기 때의 처세술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계곡으로 내려가 발도 살짝 담갔다. 그녀의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듯하다. 산을 배경으로, 철로 위에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다. 목적지는 삼척항이지만 전혀 예상하지 않은 간이역 순례가 되었다. 누군가 그랬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면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고. 우리가 들렀다 온 추전역, 철암역, 승부역까지 오는 길은 험준한 산길이었다. 길이 험할수록 경치는 아름다웠다. 그녀에게 찾아온 시련은 더 큰 일을 하기 위한 돋음새일 것이다.

누구나 한때는 여름처럼 힘차게 뻗어나가려 한다. 여름은 눈과 손이 빠른 계절이다. 그녀와 나는 가을이다. 생각과 행동이 경솔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만나지 못하는 선로처럼 떠나는 길은 서로 다르겠지만, 목적지까지 가다 보면 여러 난관을 만난다. 길을 잘못 들어 낭패를 보기도 하지만 잘 못 든 길에서 뜻밖의 풍경을 만나기도 하는 것이다. 인생이 어찌 순탄하기만 하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생긴 일은 풀어나가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슬기롭게 잘 헤쳐나가리라 믿는다. 바람끝이 까슬까슬하다. 이 바람이 그녀에게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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