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
밖에서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
  •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 승인 2019.08.2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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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우리는 직면한 환경과 활동 영역에 따라 바라보는 세계가 다르다. 많이 배웠다고 해서 세상을 잘 읽고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 관심을 두고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과 질이 달라진다.

급변하는 세계 속에 우리는 가야 할 길, 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은데, 반복되는 오류의 인간사는 늘 제자리걸음이다. 며칠 전만 해도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국인을 흥분시키더니 최근에는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문제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결과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만,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잘못된 것이 있으면 이참에 바로 잡아야 한다.

선구자는 공과 사가 분명해야 하고, 언행일치가 되어야 한다. 특히 말(言)이 말(馬)이 되어 날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번 건으로 상대방에 대한 비방이나 욕설 또한 SNS에서 난무하는 걸 보면 서글프다. 한국어는 외국어와 달리 차별화된 선어말어미와 존경어가 있다. 밝은 세상을 위해 노출된 공간에서는 순화된 언어를 사용했으면 좋겠다.

국내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한국과 일본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해야겠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힘을 모아 대응하는 국민의 힘이 무색하지 않게 정치인들도 정신을 바짝 차려 위기를 잘 극복해 주기를 바란다. 반세기를 겨우 산 나로서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급성장했는지 실감한다.

1990년대 말, 나는 캐나다 마니토바주 모던이라는 타운에 살았다. 이곳에 사는 캐나다인들은 한국이란 나라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캐나다인은 동양인을 보면 중국인이나 일본인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외국에 살면 중국인이나 일본인들과 밥도 같이 먹고 놀러도 같이 다니며 가족처럼 아주 친하게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TV를 사러 2시간 떨어진 위니펙 다운타운에 갔다. 키도 크고 멋진 중년의 캐나다인이 방긋 웃으며 일본말로 안녕하세요(こんにちは)? 하기에 나도 일본말로 인사를 했다. 일본 어디에서 왔느냐며 서서히 접근하기에 나는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갸웃거리더니 사요나라(안녕) 하며 그 자리를 떴다. 야릇한 기분으로 전자제품 진열대 앞에 갔더니 소니, 산요, 도시바 등 일본 제품이 번쩍거리며 돌아가는데 삼성이나 금성(LG) 제품은 눈을 닦고 쳐다봐도 보이지 않았다. 점원을 따라 한쪽 후미진 곳에 가니 포장도 뜯지 않은 채, 한국 전자제품이 쌓여 있었다. 나는 삼성 TV를 사 들고 나오면서 무슨 애국자라도 된 양 자랑스러움과 씁쓸함이 교체되었다. 1990년대 일본은 한국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경제 대국이었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 또한 전시된 전자제품과 같았다.

한국인으로는 우리 가족만 사는 모던에 어느 날 수잔이라는 학생이 찾아왔다. 수잔은 3살 때 한국에서 입양되어 노모와 단둘이 사는 인성이 착한 학생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대 차이로 데면데면 지내다가 기억에서 멀어졌다. 얼마 후 나랑 동갑인 유리꼬라는 일본 여인이 찾아왔다. 유리꼬는 교토에서 대학을 나와 캐나다인과 결혼해 모던에 살고 있었다. 당시 아이 셋 딸린 엄마로 남의 집 말똥을 치우며 용돈을 마련해 쓰고 있었다. 착한 남편이지만, 경제적 능력이 전혀 없어 보였다. 험담이나 함부로 말하지 않은 일본인이지만, 가끔 우리 집에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갔다. 참 곱상하고 마음씨도 고운 여성인데 고생하는 걸 보니 마음이 아팠다. 외국에 나가면 초록은 동색이라고 한국, 중국, 일본이란 국적은 사라지고 같은 동양인으로 하나가 된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많이 성장했지만, 외국인이 바라보는 세 나라의 이미지는 다르다. 세계 속에 한국이 되기 위해서는 쪼잔하게 개인 이익에만 혈안이 될 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의식 수준을 높여야 한다. SAMSUNG, HYUNDAI라고 쓰인 컨테이너가 다른 나라 컨테이너 사이에서 유럽대륙을 달리고 있을 때 그를 보고 그대는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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