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정서)의 논리 (logic of emotion)
감정(정서)의 논리 (logic of emotion)
  •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 승인 2019.08.2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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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숲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우리의 정서를 들여다보면 감정이나 정서는 기계적인 편이며, 그것들이 발현되는 데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그런 패턴을 잘 분석하면 감정이나 정서가 어떤 구조를 갖고 있는 지를 파악할 수 있는데, 그걸 감정(정서)의 논리라고 명명해보았다.

정서의 구조를 논하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하는 개념이 있는데, 나와 너, 나와 다른 사람, 나와 다른 것이다. 이를 압축해서 표현하면 자-타(自-他) 관계이다. 자타관계를 통해서 사람의 정서를 개략적으로 유형화할 수 있다.

인간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정서를 유형별로 정리해보면 기쁨(喜), 성냄(怒), 슬픔(哀, 悲), 두려움(懼, 恐), 사랑(愛), 싫어함(惡, 憎), 걱정(憂), 즐거움(樂), 욕심(欲) 등이 있다. 인간의 머리에서 일어나는 정서나 느낌은 하도 오묘하고 섬세해서 이렇게 유형화하는 건 상당히 위험하지만 적어도 인간의 행동(motion)을 유발할(e-) 정도로 확실하고 강렬한 느낌으로서의 정서(e-motion)는 어느 정도 유형화가 가능하다.

사례 분석을 해보자. 기쁨(喜)이란 무엇이며 언제 일어날까? 자기 뜻대로 되면 사람은 기뻐한다. 아이들은 자기가 원하는 걸 얻으면 기뻐하고 뺏기면 슬퍼한다. 대상(他)이 자기(自)의 뜻대로 되면 기뻐하게 된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멋진 경치를 보면 사람은 기뻐한다. 곧 기뻐한다는 건 대상이 자기에게 맞춰줄 때 생기는 정서이다.

화가 난다(怒)는 건 무엇일까? 사람은 무시당하면 화가 난다. 자기에게 위해를 가하려 할 때도 상대에게 화가 난다. 상대가 내 말을 따르지 않을 때도 화가 난다. 상대가 정말 인간 같지 않을 때도 그 인간을 보면 화가 난다. 자신이 정당하고 옳은데 그걸 상대가 잘못됐다고 하거나(무시하거나) 상대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걸 옳다고 할 때 화가 난다. 화가 난다는 건 자신이 옳다는 걸 전제하며 자기(自)가 다른 사람(他)에게 위협을 받는다고 느낄 때 생기는 정서이다.

슬퍼한다는 건 무엇이며 언제 슬퍼할까? 자신의 것을 잃어버렸을 때 슬퍼진다. 자신의 귀속물이라고 할 수 있는 대상(他)이 사라져 스스로에게 결핍이 일어날 때 슬퍼한다. 공갈 젖꼭지를 빨 때 그것은 자신의 것인데, 그게 사라지면 슬퍼져서 운다. 이때 그걸 뺏어간 상대에게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화가 나면서 슬픈 것이다. 슬퍼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대상(他)이 있어야 한다. 그 대상의 사라짐은 자신에게 허전한 마음과 같은 빈 공간(결핍, 상처)을 낳고 그것이 슬픔이다.

각종 정서는 결국 자타(自他) 관계에서 나타난다. 이 경우, 나와 다른 대상을 관계시켜주는 작용이 인간의 욕구이다. 나의 마음(自)이 다른 것(他)을 향하는 작용이 욕구(欲)이다. 곧 `自→ 他'에서 화살표의 기능을 하는 것이 욕(欲)인 것이다. 화살표가 열리거나 긍정적이면 기쁨, 사랑이 되고 화살표가 폐쇄적이거나 부정적이면 화가 나거나 슬퍼지거나 미워하게 된다.

이렇게 분석하면 화를 내거나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것이 가능할까?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을 수 있는 이론적인 근거는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기쁘고 슬프며, 화가 난다. 안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건 이미 답이 나와 있다. 정서는 나와 남(自-他)이 전제되어야 나타나기 때문에 나와 남이 없어지면 정서적인 동요를 전혀 일으키지 않을 수 있다. 자타(自他)관계가 성립하기 위한 조건은 나(自)이다. 따라서 내(自)가 없어지면 당연히 남도 없어지고, 그 결과로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키지 않을 수 있으며 그러면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수 있다. 나를 없앨 수 있냐고?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답이 가능하다. 그런 질문을 하는 한에서는 불가능하다는 답이 그 하나이며, 두 번째는 원래 나(自)는 없다는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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