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2
그녀에게 2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9.08.0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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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강대헌 에세이스트
강대헌 에세이스트

 

중복(中伏)의 땡볕이 한창이던 천안 도심지에서 시내버스 정류장을 찾느라고 한 되 정도의 땀을 흘리다가 택시를 탔어요. 도착한 문화살롱 `제비다방'의 이름엔 이상과 금홍이 낳았던 그림 같은 사랑 한 점의 사연이 그대로 담겨져 있더군요.

자신의 정체성을 대중음악사학자로 소개하는 장유정과 주화준 트리오가 준비한 무대는 `그녀에게 2'로서 1950~1970년대에 활약했던 11명의 `그녀들(여성 가수들)'의 노래를 한 곡씩 들려주었습니다.

`격동기의 여성 가수들과 노래'라는 테마로 열린 렉처 콘서트(lecture concert)답게, 무대는 노래와 관련된 가수들의 숨겨진 이야기와 시대적인 배경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죠. 노래와 맞물렸던 몇몇 영화들과 대한뉴스를 덧붙인 것도 재미를 더했고요.

11명의 그녀들과 노래는 이랬습니다. 금사향의 `홍콩 아가씨',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 송민도의 `나 하나의 사랑', 한명숙의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 패티킴의 `못잊어', 김추자의 `무인도', 정훈희의 `꽃밭에서', 혜은이의 `당신은 모르실거야',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 양희은의 `아침이슬'.

놀라웠던 것은 그 노래들을 강의를 맡았던 장유정(단국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이 재즈 밴드 주화준 트리오의 연주와 함께 직접 불렀다는 겁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도 말이죠. 무대를 마련하느라 쏟아냈을 `그녀(장유정)'의 땀이 족히 몇 가마니가 됐을 거란 생각에 그날 땡볕에 모락모락 김이 나던 제 몸은 순식간에 진화되고 말았답니다.

그녀들의 메시지에 대한 그녀의 오마주는 한 장르의 역사를 숨 쉬게 만드는 고결한 `반응'이었습니다. 기록(record)과 연구 보고(report)와 재연(replay)의 작업들이 가치를 증명하는 재형성(remodeling)으로 연결되는 그야말로 의미 있는 `반응(reaction)'말이죠.

노래를 듣다가 장유정의 음색이 혜은이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에게도 가수 이름이 따로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도 들었습니다. 이왕이면 그녀의 이름과 소릿값이 같은 `유정(有情)'이 어떨까요. 일제 강점기로부터 2000년대까지를 아우르는 대중가요에 대한 그녀의 두텁고도 따뜻한 정이 몰입과 헌신의 형태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앙코르로 부른 두 곡 중 서문탁의 `처음'은 한때 로커(rocker)의 꿈을 가졌다는 그녀의 가창력을 여실히 드러내 주기도 했지요. `비상하는 언니들(1980~2000년대)의 삶과 노래'를 주제로 10월 1일에 펼쳐질 `그녀에게 3'도 응원하며, 또한 그녀를 통해 어둔 밤의 별빛처럼 반짝거리는 교양의 힘이 차곡차곡 확장되길 바랍니다.

그녀의 `경성야행(京城夜行)'음반 제작 크라우드 펀딩에 관한 소식도 많은 분들이 챙겼으면 하는 바람을 가집니다. 지난 5월 27일에 `그녀에게 1:근대 여성 가수들의 삶과 노래'를 어쩌다 구경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기만 하군요.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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